아버지는 내게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유엔, 이건 내 체질이 아니야. 그저 떠드는 것, 항상 떠드는 것뿐이라니까. 나란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이해심 깊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네 하루는 어땠니?」
「항상 그게 그거.」
「학교에서는 1등, 발레에서는 별로 빛을 못보고?」
「응. 하지만 나는 무용가가 될 거야.」
「물론이지.」
아버지는 그냥 말뿐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내가 외교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걔는 나를 닮았거든.」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배고픔의 자서전』의 한 장면입니다.*
이 산뜻한 대화를 읽고 한참 동안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러웠고 부끄러웠습니다.
물론 악당들도
임자를 만날 때가
있다.
지금도 기억난다.
언젠가 집 안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아버지가
심하게
싸웠어."
찾아보니
아버지는
변기에 앉아 있었고
화장실 문은
열려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멍들고 붓고
눈은 시꺼멓게 부풀어
엉망이었다.
한 팔은 부러져
깁스까지
하고서.
당시 열세 살이던 나는
우두커니 서서
아버지를 쳐다보며
뜸을
들였다.
아버지가 소리쳤다.
"뭘 쳐다보는
거야!
뭐 문제
있나?"
나는 좀 더
아버지를 보다가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3년쯤
뒤에
나는 아버지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주었다.
그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창작 수업』에서 본 「악당」이라는 시의 후반부입니다.** 아버지가 악당으로 등장한 건지 '나'가 악당이라는 건지……. 아무래도 아버지가 악당 쪽인 것 같았습니다.
나는 최근에 이 두 작품을 읽었고 씁쓸했습니다.
'내가 악당이 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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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06, 103. [본문으로]
** 황소연 옮김, 민음사, 2019, 6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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