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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아버지

by 답설재 2020. 3. 23.

 

"工事中"(MISULRO KIUDA)

 

                                 

 

아버지는 내게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유엔, 이건 내 체질이 아니야. 그저 떠드는 것, 항상 떠드는 것뿐이라니까. 나란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이해심 깊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네 하루는 어땠니?」

「항상 그게 그거.」

「학교에서는 1등, 발레에서는 별로 빛을 못보고?」

「응. 하지만 나는 무용가가 될 거야.」

「물론이지.」

아버지는 그냥 말뿐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친구들에게 내가 외교관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걔는 나를 닮았거든.」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배고픔의 자서전』의 한 장면입니다.*

이 산뜻한 대화를 읽고 한참 동안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러웠고 부끄러웠습니다.

 

 

물론 악당들도

임자를 만날 때가

있다.

 

지금도 기억난다.

언젠가 집 안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아버지가

심하게

싸웠어."

 

찾아보니

아버지는

변기에 앉아 있었고

화장실 문은

열려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멍들고 붓고

눈은 시꺼멓게 부풀어

엉망이었다.

한 팔은 부러져

깁스까지

하고서.

 

당시 열세 살이던 나는

우두커니 서서

아버지를 쳐다보며

뜸을

들였다.

 

아버지가 소리쳤다.

"뭘 쳐다보는

거야!

뭐 문제

있나?"

 

나는 좀 더

아버지를 보다가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3년쯤

뒤에

나는 아버지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주었다.

그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찰스 부코스키의 시집 『창작 수업』에서 본 「악당」이라는 시의 후반부입니다.** 아버지가 악당으로 등장한 건지 '나'가 악당이라는 건지……. 아무래도 아버지가 악당 쪽인 것 같았습니다.

 

나는 최근에 이 두 작품을 읽었고 씁쓸했습니다.

'내가 악당이 되었구나…….'

 

 

 

................................................

* 전미연 옮김, 열린책들, 2006, 103. [본문으로]

** 황소연 옮김, 민음사, 2019, 6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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