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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시간12

하루 또 하루... 나는 아침 6시가 되기 전에 일어난다. 이후의 시간은 나 몰래 흘러서 금세 저녁이 되고 서성거리다 보면 깊은 밤이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가는 걸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다만 지켜볼 수밖에 없다. 포기 상태가 되었다. 2023. 10. 13.
꽃이 진 자리 한때 파란 꽃이 더 많던 자리에 흰 꽃이 늘어나 주종(主種)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돌보지 않았던 저곳의 저 꽃들은 이미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저버린 곳에 지금은 다른 종류의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가을 끝 무렵 그 풀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가버리고 다시 두어 가지 풀들이 새로 자리를 잡아 겨우내 근근이 혹은 꿋꿋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저 꽃들을 들여다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저 꽃들 중 어느 하나가 나에게 긴 세월에 비하면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진 않다고 거의 다 지나갔다고 이야기해주려고 했었을지도 모릅니다. 2023. 8. 1.
겨울밤 벽시계 사륵사륵…… 사각사각…… 눈 내리나? ... 아니네? ... 좀벌레가 벽을 갉아먹고 있나? 아, 벽시계 소리! 갉아먹는 소리 같은, 눈 오는 소리 같은 갉아 먹히고 내려서 사라지는 나의 겨울밤 나의 시간 2023. 2. 17.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장편소설 《토성의 고리》 이재영 옮김, 창비 2011 한여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992년 8월, 다소 방대한 작업을 끝낸 뒤 나는 내 안에 번져가던 공허감에서 벗어나고자 영국 동부의 써픽 카운티로 도보여행을 떠났다.(10) 이렇게 시작된다. 파괴와 고통, 희생 같은 것들로 점철되어온 역사를 슬픔으로 바라본 기록이다. 무자비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죽어갔고 폐허, 파괴의 흔적만 남아 있다. 보이는 것마다 공포와 공허, 덧없음, 우울을 보여준다. 슬픔은 끝이 없다. '토성의 고리'? 우리 모두는 우리의 유래와 희망이 미리 그려놓은 똑같은 길을 따라 차례차례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우연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할수록 나는 점점 더 자주 나를 엄.. 2022. 3. 25.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전기)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이상원·조금선 옮김, 황소자리 2004 나의 시계는 끊임없이 질주한다. 한때는 시계가 너무 많더니 이젠 이 방엔 단 세 개뿐이다. 자다가 깨어 화장실 갈 때 시각을 확인할 수 있는 탁상시계, 회의를 하거나 누구를 만날 때 스마트폰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각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젠 소용이 없게 된 손목시계, 초침이 1분에 한 바퀴씩 숫자판을 일주하는 저 벽시계가 그것들인데 벽시계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조급해진다. 초침이 너무나 분주하기 때문이다. 그 초침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나 싶고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뛰쳐나가 무슨 일을 저질러야 할 것 같은 강박감을 느끼게 된다. 류비셰프는 그의 시간을 이렇게 살았단다... 2021. 12. 25.
속절없는 나날들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줄은 잘 압니다. 이곳에 눈이 내리던 저 날만 해도 사태는 시작에 불과했고 이런 상황일 줄은 몰랐습니다. 남은 게 그리 넉넉하지 않아서 정말 뭔가 좀 해야 할 처지인데 오늘도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저렇게 재깍거리고 똑딱거리는 시계가 원망스럽습니다. 이 방에만 해도 세 개인 시계가 우습게 보입니다. 뭘 하겠다고 시계를 모아 두었을까? 시계가 여러 개이면 시간을 조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내 시간이 좀 늘어나기라도 할 줄 알았던 걸까? 변함없이 저렇게 재깍거리고 똑딱거리는 저 시계를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안부 전화로, 자랑처럼,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을 보낸다던 K 교수가 '알파고'처럼 느껴집니다. "시간을 정복한 사나이 .. 2020. 4. 15.
월간지 표지 사진 책을 들고 있던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기억들을 따라 서글픔이 밀려온다. 1. 2개월 전, 1, 2년 전 책도 그렇고 오래된 책은 더욱 그렇다. 모호하거나 짜증스럽거나 뭔가 초조해서 읽지도 않고 넘겨버린 글도 있었던 그 많은 시간들…… 우루루 몰려와 그렇게 머물던 그 수많은 시간들,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그 시간들, 어디로 가고 있을까. 되돌아올 수나 있는 길에 있을까. 그것들……. 2017. 7. 27.
세월 2017. 5. 20.
이 시간 나를 멀리 떠나는 생각들 뒤로 더러 앞으로 빛살처럼 가버리는 것들 2017. 5. 18.
토마스 만 『마의 산』 서글픔을 느끼게 한 책입니다. 939쪽이나 되었습니다. 저 책을 만만하게 펼치고 앉아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이 유명한 책을 찾게 된 것은 『카뮈를 추억하며』 때문이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디노 부자티의 희곡 「흥미로운 증례」**를 번역해서 연출했다. 그는 더 강한 활력을 주기 위해 작품의 길이를 줄였다. 이 희곡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러한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환자들이 병원 창문을 통해 건강한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환자들에게는 이들이 낯설게 보인다. 두 진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각 진영에는 다른 진영에 대한 완전한 이해 불가능성이 지배하고 있다. 알베르 카뮈는 『마의 산』의 요양소 거주자들이 경험하는 그 .. 2013. 8. 22.
『오래된 미래』Ⅱ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김종철․김태언 역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녹색평론사, 1996 인용한 부분들에서 이미 이 책의 메시지 전체를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그의 관점들에서 다음과 내용들은 특별히 눈길을 끄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서구의 교육은 1970년대에 라다크의 마을들에 들어왔다. 오늘날 약 200개의 학교가 있다. 기본적인 교과과정은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가르치는 것을 어설프게 흉내낸 것이고, 그것은 또 영국 교육의 어설픈 모방이다. 거기에는 라다크의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한번은 레에서 어느 교실에 가보았을 때 교과서에 런던이나 뉴욕의 것임직한 아이의 침실 그림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림에는 깔끔하게 접혀진 손수건 무더기가 기둥 달린 침대 위에 놓여 있고 그것을.. 2009. 12. 10.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Ⅰ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김종철·김태언 역, 녹색평론사, 1996 지난 11월, 베이징에 갔을 때 우리를 안내한 인민교육출판사 직원은, 중국의 여러 관광지 이야기를 하면서 열차로 48시간이면 티베트까지도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문득『닥터 지바고』가 생각났습니다. 몇 날 며칠이고 끝없이 달린다는 러시아의 그 대륙 간 횡단열차……. 베이징에서 48시간이면 티베트까지도 갈 수 있다는 중국의 그 칭짱열차에 대한 책도 나왔습니다. 신문에 소개된 글을 찾아봤더니 이렇게 시작됩니다.* ‘길이 열린다면, 정말 친한 벗 혹은 최악의 적들이 우리의 방문자가 되리라.’(티베트 격언) 2006년 7월 1일, 티베트 고원 지대에 칭짱(靑藏) 철도가 개통됐다. 칭하이(靑海)성 거얼무(格木).. 2009.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