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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버트런드 러셀9

늙으면 왜 지겨운 사람이 될까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어서일까, 교육부에 들어가 맨 처음 만난 사람 중 한 명인 C가 찾아오겠다며 '쐬주 한 잔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달라고 했다. 모처럼 만나면 어색할까봐 그랬겠지, 우리가 다 아는 사람 둘을 대며 함께 가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네 명이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을 때 이 자리를 마련한 그에게 감사 인사 겸 근황을 묻고 싶었는데, 교육부 근무 기간이 겨우 2년 정도였지 싶은 O가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제는' '이제는' 하며 우리도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지만 그는 아예 잠시도 틈을 주지 않았다. 누가 서두만 꺼냈다 하면 말도 끝내기 전에 그가 얼른 받아서 늙으면 뼈를 조심해야 하고, 근육은 한번 생기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곳으로 퍼져 나간다느니, 인대는 구조가 어떻.. 2023. 5. 7.
버트런드 러셀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Ⅱ Ⅰ 경험담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에 대하여 ‘까짓것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걸 왜 협조해주지 않을까? 의아해 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버트런드 러셀이 쓴 『런던통신』이라는 책을 읽고서부터입니다. 그가 그 두꺼운 책 중의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라는 글에서 밝히기를, 지겨운 사람이 되는 갖가지 방법들과 그것을 피하는 방법들을 정리해 일곱 권으로 된 학술논문을 쓸까 생각 중이며, 그 일곱 가지 부류 중, ▶ 계속되는 변명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 지나친 근심으로 지겹게 하는 사람, ▶ 스포츠 이야기로 지겹게 하는 사람에 관한 연구는 "아직 미완성"이라고 했는데, 딴에는 삶의 지혜의 한 가지로 변명을 일삼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걱정도 팔자"라거나 "군대 가서.. 2015. 4. 9.
대실망- '미리 목을 졸라 숨을 끊어 주는 은혜'도 없는 세상 버트런드 러셀은 '인류에 해를 끼친 관념들'이라는 글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간의 불행은 아마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인간과 무관한 환경이 가하는 불행이고, 둘째는 다른 인간들이 가하는 불행이다. 환경이 가져다주는 불행? 바로 '천재지변' '쓰나미' '화산'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고, 인간들이 인간들에게 가하는 불행에 대해서는 '그래, 맞아! 불합리하거나 이기적인 인간 때문에 속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했는데, 글을 읽어가면서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싶었고, 드디어 '세상의 한 단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갈 뻔했구나!' 할 정도였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세상에 대한 '대실망(大失望)', 혹은 새로 생긴 좀 익살스러운 용어로는 세상에 대한 '급 실망(急失望.. 2015. 3. 19.
여담(餘談) 여담(餘談) ♬ 회의를 마치고 하는 식사에 빠지는 사람은 '꼭' 빠져 집으로 가는데 나는 '꼭' 참석하는 쪽입니다. 회의는 산뜻하게 진행되기가 어려운 것이긴 하지면, 한두 명은 으레 늦게 할 말이 많이 생각나서 열을 올리고, 게다가 어떤 사람은 핵심도 없는 얘기로 중언부언하며 자신의 .. 2014. 9. 19.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최혁순 옮김, 문예출판사 2013 Ⅰ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단순하긴 하지만 압도적으로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생애를 지배해왔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지식의 탐구, 그리고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열정이 마치 거센 바람처럼 제멋대로 나를 몰고 다니면서 번민의 깊은 바다를 이리저리 헤매게 했고 절망의 극한에까지 이르게 했다. 내가 사랑을 추구해온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황홀한 열락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몇 시간에 불과한 이 즐거움을 위해 내 남은 인생 전부를 희생하려 했던 적이 종종 있었을 만큼 사랑의 열락은 대단한 것이다. 내가 사랑을 추구해.. 2014. 7. 20.
버트런드 러셀 『인기 없는 에세이 Unpopular Essays』 버트런드 러셀 『인기 없는 에세이 Unpopular Essays 1950』 장성주 옮김, 함께읽는책 2013 Unpopular Essays. 1950. London: George Allen & Unwin Ⅰ 실제적인 이야기로 시작하기가 어렵고 싫어서 그냥 갖다 대듯 하면, 40여 년 전에 저승으로 간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1872~1970)은, 민주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한 나라의 국민들이 수가 거의 같은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 증오하고 상대편의 목을 조르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이때 수가 절반에 약간 못미치는 편은 다른 편의 지배에 순순히 복종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수가 절반을 약간 넘는 편 또한 승리를 거둔 순간 양편 사이의 반목을 치유하는 데 필.. 2013. 12. 23.
버트런드 러셀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버트런드 러셀이 쓴 『런던통신』은 그가 1931~1935년에 '런던통신'이라는 신문에 실은 글을 모은 책입니다. 그 번역본에는 재미있는 글, 위트에 넘치는 글, 읽은 내용을 잘 기억만 한다면 어디 가서 유식한 척할 수 있는 글들이 수두룩하여 일일이 세어봤더니 135편이나 되었습니다. 가령 이런 것들입니다. '질투에 관하여' '섹스와 행복' '관광객의 미스터리' '노인을 위한 나라' '마음만 먹는다면' '립스틱을 발라도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경험에서 배워야 하는 것' '돈을 향한 희망, 돈에 의한 공포'…… 그 중에는 「지겨운 사람들에 관한 연구」라는 글도 있습니다. 러셀은 이 글에서 밝히기를, 지겨운 사람이 되는 갖가지 방법들과 그것을 피하는 방법들을 정리해 일곱 권으로 된 학술.. 2012. 5. 22.
"제7차…" 하면, "야! ○○○!"으로 들리던 시절 Ⅰ 누가 "제7차 교육과정" 어떻고 하면 나에게 유감이 있어서 "야! ○○○! 너 이리 와봐!"라거나 "○○○, 그 녀석 어떻고……" 하는 걸로 들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그때는 자주 들렸기 때문에 '이러다가 제 명에 죽을 수나 있을까?' 싶기도 했었습니다. Ⅱ 제7차 교육과정 때문에 원망을 들은 장관들은 여러 명입니다.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는 억울한 장관도 있고, 책임을 져야 마땅한데도 그렇게 할 기회를 갖지 못한 장관도 있습니다. "객관적으로는 억울하다"는 건 그 장관은 제7차 교육과정의 '제'자도 꺼낸 일이 없고 다만 장관이 되어 그 교육과정의 시행을 독려하는 소임을 다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that) 장관은 제7차 교육과정의 원흉!"이라며 몰아세운 경우입니다. 그런 입장의 장관이 제가.. 2012. 3. 26.
버트런드 러셀 『런던통신 1931-1935』 버트런드 러셀 《런던통신 1931-1935》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2011 위트에 가득 찬 에세이집입니다. 영어를 일상적으로 읽지 못하는 한탄스러운 처지여서 번역본을 읽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스스로 안타깝지만, 원본을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더 시원하고 행복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위트란 이런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행동이 허용되는 직업들은 수준 높은 사기를 쳐야 하는 직업들에 비해 대체로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법인 변호사나 부패한 정치가, 인기 좋은 정신과 의사는 도덕적 견해를 아주 정직하게 매우 자주 발언하리라는 기대를 받지만, 이 고된 일의 대가로 적절한 보수를 받기 마련이다. (176쪽, 「진정한 도덕과 교화의 차이 on Being Edifyin.. 2011.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