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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코리아 찰스 디킨스

by 답설재 2024. 7. 17.

이제 보니 블로그는 맛집이면 맛집, 여행이면 여행, 책이면 책, 일상이면 일상, 뭐든 한 주제를 깊이 있게, 흥미롭게, 전문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인데, 나는 종횡무진, 오합지졸, 중구난방, 또 무슨 말을 더해야 이걸 제대로 표현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내 편한 대로 숨길 건 숨기고 밝혀도 좋을 것은 기록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예전에 우리 국민학교 다닐 때 담임선생님들이 '국어, 산수, 사회... 체육' 식으로 교과목별 공책을 다 마련하고 아무거나 쓸 수 있는 '잡기장(雜記帳)'도 한 권 별도로 준비하라고 했을 때의 그 잡기장이 되어버린 것이 내 블로그가 되었다.

 

그러니 어떻게 하나...

'나도 한번 블로그답게 해 보자!' 하면, 블로그를 열 개 이상 마련해야 할 판이고, 그건 말이 되지 않고,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 집어치우고 뭐든 한 가지만 써보자 하기도 멋쩍고, 얼마동안 고심을 거듭하다가 그 시도를 포기하고 말았다.

 

블로그 개설 연유나 역사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만한 말이 많다. 2007년 여름에 개설해서 오늘에 이르렀으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일전에, 뭘 좀 찾다가 개설 초기에 열거해 놓은 독자들 닉네임 목록을 들여다보았더니 지금도 교류가 있는 독자(지인)는 딱 세 명뿐이었다. 그것도 자주 찾아오지도 않는 독자여서, 나는 갑자기 '더' 슬퍼졌다.

슬픔...

내게 블로그는 결국 슬픔의 이름일까?

 

흔히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이러지 말고 오프라인으로도 가자!"는 온갖 사람이 있었다. 마지못해 그러자고 해 주었는데도 그들은 좀 상대해 보다가 다 가버렸다.

그건 또 다른 버전의 슬픔이다.

슬픔...

왜 나는 슬퍼야 하나?

운명인가?

그래서 요즘은 누가 오프라인으로도 가자고 할까 봐 노심초사다.

블로그 가지고 더 마련하고 싶지 않은 게 슬픔이다.

 

 

컴퓨터에서 벗어나 손으로 종이에 글을 쓰면 머리가 맑아집니다 책 읽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자책에서 벗어나

종이에 인쇄된 글을 읽을 때 사람의 마음은 건강을 얻고 머리 또한 맑아짐을 느낍니다 그것 참 신비롭습니다. 답설재 선생님 글을 복사 인쇄해 읽을 때를 빼고 이제 블로그 생활 하지 않아요

 

 

이건 일면식도 없는 불친 코리아 찰스 디킨스 님의 '선언'이다.

내가 느끼기로(!) 그는 나처럼 슬픈 사람이다.

그렇지만 내년쯤 오십이 되는 것 같아서 아직 무슨 희망이나 계획 같은 걸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고, 그렇다면 그 슬픔들을 얼마든지 떨쳐낼 수 있으므로 그러지 말고 뭐든 바꿔 보시라고, 그럴 때 나와의 인연 같은 것도 던져야 되겠다면 그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는 이미 슬퍼야 할 사람이라면, 참 싫지만 더 슬퍼진다고 그 슬픔 때문에 무슨 수가 나기야 하겠나 생각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기억 속에 답설재가 남아 있을 것이고 그럼 된 것 아니냐고 생각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 이건 너무 소극적인 표현이다. 나는 그가 나를 벗어났으면 좋겠다(아, 물론 나만 생각한다면 그냥 이대로도 좋긴 하다). 그 벗어남이 그의 슬픔을 벗어나는 길이면 좋겠다!

 

☞ 사진은 코리아 찰스 디킨스 님 블로그 메인화면 프로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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