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성란 그림·손정민 《나비의 기도》
고래책빵 2022
문성란의 동시를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조용한 시의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세상은 지금 이 세상보다 넓고 크다.
조용히 그 세상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행복하다.
둥근 말
힘겨루기하더라도
찌르지는 말자고
둥그렇게 구부린
사슴벌레의
뿔
씩씩거리며 덤벼들다가 나뒹굴고 다시 일어나 씩씩하게 다가가 겨루는 그 녀석들이 보고 싶다.
그 둥근 뿔이 보고 싶다.
정녕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일까...
사슴벌레를 보거든 아이들이라도 이 시를 떠올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라도?' 주제넘고 어처구니없지? 우리는 말고 아이들이라도?
친구가 좋으면
내 짝꿍 대구로
이사 간 뒤
"어데예―"
"아니라예―"
대구 말이 들리면
내 귀는 쫑긋
장맛비 내리면
거기에 큰비 오면 어쩌지?
달 뜨는 밤엔
친구도 저 달 보고 있을까?
튤립 필 때면
대구 튤립도 보인다
낯설었던 대구가
짝꿍처럼 좋아진다
그런 순간이 있지?
시인은 그런 순간을 붙잡아 보여주는 사람일까?
바쁜 사람들, 이것저것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 아련한 순간을 배달해 주는 사람일까?
어떤 바위는
높은 하늘을 보는
바위도 있고
많은 사람을 보는
바위도 있지만
눈여겨 꽃을 보는
바위도 있어
양지꽃 제비꽃 나리꽃 용담꽃 은방울꽃...
꽃 이름을 줄줄 외우는
어떤 바위
나한테도 눈이 있는데 왜 나는 그 바위들을 눈여겨보지 못했을까? 생각하다가 그러니까 시인이 있는 것,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시인의 세상을 인정한다.
아름다움에도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 ) 안에만 답을 쓰게 하고 ①②③④⑤ 다섯 가지 중에서만 고르라는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이 시를 가지고 찾아가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서 어쩌자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세상의 아름다움인 어린이와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한 어른에게 가 닿아
고운 물들이기를 소망하며
('머리말')
시인의 진정성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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