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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정나래 동시집 《뭐라고 했길래》

by 답설재 2023. 2. 23.

정나래 동시집 《뭐라고 했길래》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시

정나래 동시 이새봄 그림, 아동문예 2022

 

 

 

 

 

 

코코!

오랜만이에요.

그래서 복잡한 얘긴 하고 싶지 않아요.

동시 한 편 보여줄게요.

 

 

 

밤나무

 

 

혼자 사는 할머니

밤사이 잘 주무셨나

궁금해하던 밤나무가

 

뒷마당에

알밤 몇 개

던져 보았습니다

 

날이 밝자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바가지를 들고 나옵니다

 

안심한 밤나무는

다음 날에 던질 알밤을

또 열심히 준비합니다.

 

 

 

코코는 어떻게 생각해요?

난 동시 쓰는 작가들 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 작가 마음은 정말 알 길이 없다 싶었어요.

알밤이야 줍는 사람 마음이잖아요?

할머니가 일찍 일어나 줍든지, 누가 얼른 가서 줍고 자랑을 하든지 시치매를 떼든지, 하다못해 다람쥐가 한두 개 가져가든지,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밤나무가 다 생각해놓고 있었다니요.

밤나무는 나 같은 사람에게 뭐라고 하겠어요.

어처구니없는 인간... 어쩌고...

 

또 한 편 보여줄게요.

할아버지 얘기도 나오면 좋겠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도 할머니 얘기네요.

어쩔 수 없겠지요.

 

 

 

손수레가

 

 

폐지 가득 싣고 가는

손수레 한 대

 

접은 상자같이

허리 반으로 접힌

할머니를

 

손수레가

천천히 밀고 간다.

 

 

 

코코!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요?

이 동시를 쓴 시인은 말(詩)도 아주 쉽게 풀어주어서 읽는 데도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아요.

그런데도 그 할머니가 그림처럼 다 보이잖아요.

할머니가 죽을힘으로 손수레를 끌고 간다고 하지 않고 손수레가 할머니를 천천히 밀고 간다고 했지만, 누가 그걸 모르겠어요.

저렇게 쉽게 얘기하는 시인의 마음을 누가 모르겠어요.

 

또 한 편 볼게요.

이번에도 아예 할머니 얘기를 골랐어요. 시리즈로 가려고요 ^^

이번에는 뭐랄까, 멋쟁이 할머니 얘기네요.

 

 

 

꽃은 용서함

 

 

텃밭에서는

풀 한 포기 안 남기고

다 뽑아 버리는 할머니

 

텃밭 가운데 태어나

조마조마하던

제비꽃 민들레꽃이

활짝 웃고 있어요

 

할머니가

꽃이라고 봐 준 거랍니다.

 

 

 

코코에게 얘기를 시작할 땐 이렇게 세 편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코코가 정나래라는 작가는 할머니 얘기만 쓰나? 할까 봐 한 편만 더 옮겨볼게요 ~

 

 

 

신난다, 낙엽

 

 

낙엽 쓸고 돌아서면

또 떨어지고

다시 쓸고

또 쓸고

 

바닥 쓸던 아저씨가

빗자루 집어 던지고

나무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나무가 놀라 움켜쥐었던 잎

한꺼번에 쏟아냈다

 

아저씨 씩씩거리거나 말거나

신이 난 낙엽들

이리저리 구르고 있다.

 

 

 

코코!

나도 빗자루로 단풍을 털고 나무를 쥐어 흔드는 아저씨, 아주머니 봤어요.

'저걸 그냥!'

그곳 책임자에게 일러바치려고 사진까지 찍어두었지만 차일피일하다가 겨울이 와서 내년에 또 그러나 보자 했는데 이 시 보고 생각이 복잡해졌어요.

난 팔십이 다 되어가도록 무슨 생각을 했나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고요.

아, 정말...

코코, 나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이제 다 되어가는데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아이들 같은, 가끔이라도 아이들 마음에 드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