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래 동시집 《뭐라고 했길래》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시
정나래 동시 이새봄 그림, 아동문예 2022

코코!
오랜만이에요.
그래서 복잡한 얘긴 하고 싶지 않아요.
동시 한 편 보여줄게요.
밤나무
혼자 사는 할머니
밤사이 잘 주무셨나
궁금해하던 밤나무가
뒷마당에
알밤 몇 개
던져 보았습니다
날이 밝자
지팡이 짚은 할머니가
바가지를 들고 나옵니다
안심한 밤나무는
다음 날에 던질 알밤을
또 열심히 준비합니다.
코코는 어떻게 생각해요?
난 동시 쓰는 작가들 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이 작가 마음은 정말 알 길이 없다 싶었어요.
알밤이야 줍는 사람 마음이잖아요?
할머니가 일찍 일어나 줍든지, 누가 얼른 가서 줍고 자랑을 하든지 시치매를 떼든지, 하다못해 다람쥐가 한두 개 가져가든지,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밤나무가 다 생각해놓고 있었다니요.
밤나무는 나 같은 사람에게 뭐라고 하겠어요.
어처구니없는 인간... 어쩌고...
또 한 편 보여줄게요.
할아버지 얘기도 나오면 좋겠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도 할머니 얘기네요.
어쩔 수 없겠지요.
손수레가
폐지 가득 싣고 가는
손수레 한 대
접은 상자같이
허리 반으로 접힌
할머니를
손수레가
천천히 밀고 간다.
코코!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요?
이 동시를 쓴 시인은 말(詩)도 아주 쉽게 풀어주어서 읽는 데도 힘이 하나도 들지 않아요.
그런데도 그 할머니가 그림처럼 다 보이잖아요.
할머니가 죽을힘으로 손수레를 끌고 간다고 하지 않고 손수레가 할머니를 천천히 밀고 간다고 했지만, 누가 그걸 모르겠어요.
저렇게 쉽게 얘기하는 시인의 마음을 누가 모르겠어요.
또 한 편 볼게요.
이번에도 아예 할머니 얘기를 골랐어요. 시리즈로 가려고요 ^^
이번에는 뭐랄까, 멋쟁이 할머니 얘기네요.
꽃은 용서함
텃밭에서는
풀 한 포기 안 남기고
다 뽑아 버리는 할머니
텃밭 가운데 태어나
조마조마하던
제비꽃 민들레꽃이
활짝 웃고 있어요
할머니가
꽃이라고 봐 준 거랍니다.
코코에게 얘기를 시작할 땐 이렇게 세 편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코코가 정나래라는 작가는 할머니 얘기만 쓰나? 할까 봐 한 편만 더 옮겨볼게요 ~
신난다, 낙엽
낙엽 쓸고 돌아서면
또 떨어지고
다시 쓸고
또 쓸고
바닥 쓸던 아저씨가
빗자루 집어 던지고
나무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나무가 놀라 움켜쥐었던 잎
한꺼번에 쏟아냈다
아저씨 씩씩거리거나 말거나
신이 난 낙엽들
이리저리 구르고 있다.
코코!
나도 빗자루로 단풍을 털고 나무를 쥐어 흔드는 아저씨, 아주머니 봤어요.
'저걸 그냥!'
그곳 책임자에게 일러바치려고 사진까지 찍어두었지만 차일피일하다가 겨울이 와서 내년에 또 그러나 보자 했는데 이 시 보고 생각이 복잡해졌어요.
난 팔십이 다 되어가도록 무슨 생각을 했나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고요.
아, 정말...
코코, 나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이제 다 되어가는데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아이들 같은, 가끔이라도 아이들 마음에 드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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