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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이야기

아름다움과 슬픔 : 알퐁스 도데 《아를라탕의 보물》

by 답설재 2022. 11. 17.

   알퐁스 도데 Alphonse Daudt 《아를라탕의 보물》

《현대문학》 2022년 10월호

 

 

 

 

 

 

양치기들이 부른 수천 마리의 양들이 양치기 개들에게 쫓기어 우리로 바삐 가고 있었다. 곱슬곱슬한 양털과 매에 매에 소리가 일으키는 회오리바람이 그를 스치고 지나가며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양치기들이 제 그림자와 더불어 양 떼 물결에 휩쓸려 가는 듯한, 그야말로 거친 파도였다. 잠시 후 어둑해진 하늘을 삼각 편대를 이룬 오리 떼가 마치 땅에 내려앉고 싶다는 듯이 아주 낮게 날아갔다. 선두에 선 오리가 문득 목을 꼿꼿이 세운 채 야생의 함성을 내지르며 다시 고도를 높였고, 오리 떼 전체가 그 뒤를 따랐다.

그때까지는 안 보이던 오두막의 문이 막 열리고, 활활 타오르는 듯한 커다랗고 네모난 빛이 들판에 내려앉았다. 동시에 소매 없는 갈색 외투를 걸치고 작은 보닛을 쓴 길고도 여릿한 여인의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 앙리를 스쳐 샤를롱네 집 쪽으로 갔다. 그래서 그는 그 실루엣이 옛날 몽마르주에서 함께 춤추던 여인, 나이스인 줄만 알았다.

"안녕하시오, 나이스......"

주변의 그림자 틈에서 마술처럼 스러져버린 젊은 여인의 유일한 대답은, 가까스로 참아 누른 웃음뿐이었다.(112~113)

 

단편소설 「아를라탕의 보물」은 알퐁스 도데의 서정성과 감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앙리 당주는 파리의 극장에서 노래하는 '여신' 마들렌 오제의 정부이다. 마들린이 자신을 속이고 미남 바리톤 아르망과 밀회를 즐기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르망, 오늘은 그 사람이 자기 부모님 댁에 가서 저녁을 먹나 봐요......"

지금까지 그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어서 앙리는 마침내 마들렌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친구 팀 드 로즈레의 사냥터지기 오두막을 찾아간다.

카마르그의 시골 몽마르주에 있는 그 별장의 사냥터지기 샤를롱은 앙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의 아내 나이스는 처녀 시절에 같이 춤을 춘 적도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지금 그 사냥터지기의 집에는 나이스의 여동생 지아가 와 있었고, 열다섯 살의 그 예쁜 소녀는 '첫영성체'를 지내고 싶어서 자꾸만 흐트러지려 하는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 평온한 사람들을 말치기 아를라탕이 휘저어놓는다.

자신이 보물을 가졌다는 것이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앙리는 그의 오두막을 찾아가 자신의 '여신' 마들렌이 상반신을 드러낸 사진을 보고 눈이 뒤집혔지만 정신을 차리고 평정심을 되찾는다.

그러나 소녀 지아는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그 유혹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오래전에 본 도색적인 판화, 색칠한 그림들을 잊지 못하는 지아는 아를라탕이 가진 것들을 자꾸 보고 싶어 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더러운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녜요, 절대로 저는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어요. 다만, 불행한 일이 하나 있답니다...... 그게 보이는 거예요...... 오! 그게...... 끔찍하다니까요...... 눈만 감으면, 심지어 눈을 떠도 그게 절 덮치죠. 금지된 것들이 따라다니면서 저를 활활 태워요...... 그래서 신부님이 제게 첫영성체를 안 시켜주시는 거예요."

불행한 소녀 지아는 그 잔인한 강박적 망상에서 벗어나려다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만다.

 

다음은 정부 마들렌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앙리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이다.

 

친구, 카마르그에 오래 산 자네는 아를라탕의 보물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지. 꼬마 지아는 그걸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죽은 거라네. 그리고 나, 나는 반대로 그 보물을 보고 치유와 생명을 찾은 것이길 바란다네. 몇 주 있으면 그걸 알게 될 걸세. 게다가 아를라탕이 해준 말이 내게 그걸 미리 알려주었다네.

"내 보물 속에는 사람 구하는 풀과 사람 죽이는 풀이 있지."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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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 생텍쥐페리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프랑스 작가이자, 양치기의 순수한 사랑을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통해 표현한 단편소설 「별」을 쓴 대작가. 1840년 5월 13일 남프랑스 님에서 출생. 부유한 가정의 삼 형제 중 막내였으나 가업이 파산하면서 열일곱 살에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에 매달림. 가혹한 현실에 자살까지 시도했지만, 그를 구해준 신부님께 '문학에 정진하라'는 조언을 듣고 1857년, 형이 있던 파리로 떠남. 기자 지망생인 형을 따라 글을 써 시집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발표해 성공하고, 당대 손꼽히던 문인들 에드몽 드 콩쿠르, 귀스타브 플로베르, 에밀 졸라 등과 우정을 나눔. 이들과 함께 자연주의 동인을 이루었으나, 시적 서정성과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그는 그만의 유연한 문체로 순박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고향 프로방스 지방에 대한 향수를 주제로 하여 특유의 인상주의적 작풍을 세움. 이러한 특징은 1869년 발표한 첫 단편집 『풍차 방앗간 편지』에 잘 드러남.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 환경,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들려준 민담 등을 작품의 소재로 썼는데, 알제리로 여행을 떠났던 경험을 토대로 유머 가득한 『타라스콩의 타르타랭』(1872)을 썼고, 연인 마리 리외와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비판적으로 회고하며 소설 『사포』(1884)를 집필함. 또한 시대상이나 정세에도 관심이 많아,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에 벌어진 전쟁 속 소시민들의 이야기 「마지막 수업」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모아 단편집 『월요 이야기』(1873)를 출간함. 열일곱 살에 걸린 병에 평생을 시달렸고, 이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자신의 경험과 통찰이 담긴 「아를라탕의 보물」을 발표하고, 그해 12월 16일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 친구였던 에밀 졸라가 추도사를 하고 그의 유해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묻힌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에 안장됨.(『현대문학』 2022년 10월호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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