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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오병훈 《게으른 식물은 없다》

by 답설재 2022. 11. 5.

오병훈 《게으른 식물은 없다》

마음의숲 2022

 

 

 

 

 

식물 연구가 오병훈은 내 친구다.

그가 올봄에 이 책을 냈다.

아내는 다른 풀은 다 뽑더라도 민들레는 그냥 두라고 했다. 민들레부터 찾아보았다.

 

민들레는 국화과의 다년초다. 밭두렁이나 길가, 냇가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른 봄 가장 먼저 부드러운 싹과 함께 노란 꽃을 피워 이 땅에 봄이 왔음을 알린다. 어린싹은 지면에 바짝 붙어 자라는 로제트형이며 잎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잎과 꽃줄기는 뿌리에 모여서 돋아나고 꽃대는 속이 비어 있다. 꽃대 맨 끝에서 짙은 노란색 꽃이 위를 보고 핀다. 이른 봄에 찬 바람을 피해 지면에 바짝 붙어 핀 꽃은, 봄이 무르익어 가면서 꽃대가 점점 길게 자라 20~30센티미터에 다다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조용히 흔들리는 것이 마치 새봄을 축복하는 듯하다.

 

민들레의 모습을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아이들이 민들레 꽃씨를 불어 날리는 모습도 보인다.

 

꽃이 지고 나면 화관이 점차 은백색 작은 깃털로 바뀌어, 씨가 완전히 익으면 깃털을 우산처럼 펼친 채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민들레는 연꽃처럼 요염하지 않고 재스민처럼 향기롭지도 않다. 평범한 듯하지만 그 어떤 꽃보다 고결하며 길가에서 짓밟혀도 되살아나는 생명력 탓에 강인한 희생정신을 표방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언 땅을 뚫고 돋아나 소리 없이 꽃을 피운다. 게다가 춘궁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나물이었으며 건강에 이바지한 유익한 자원이었다.

 

'이른 봄에 피어난다거나 꽃씨가 특이하게 퍼진다고 뽑지 말고 두라고 하진 않았겠지?'

이렇게 설명해놓았다.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 단맛을 최고로 여긴다. 음식이 맛있다는 것은 곧 달다는 뜻이다. 그러나 단 것만 먹다 보면 당뇨병 같은 각종 성인병에 걸리기 쉽다. 민들레는 쓴맛이 있기에 몸에 좋다. 사실 천연 음식물 중에 쓴맛이 있는 식품은 별로 없다. 민들레나 씀바귀는 쓴맛이 강하면서 독성이 없으니 웅담을 빼고 이처럼 좋은 식품이 또 있을까. 많이 먹을수록 위장이 튼튼하고 간 기능을 돕는 담즙이 원활히 분비되니 정말 좋은 약재가 아닐 수 없다.

 

민들레 잎, 줄기를 잘랐을 때 나오는 흰 즙액의 살충 작용, 한방에서 쓰이는 고미건위제苦味健胃劑(쓴맛이 나는 위장약)의 대표적 생약제로 쓰임도 이야기한다.

마침내 아내가 뽑아내지 못하게 한 이유가 나온다.

 

우리 겨레는 민들레와 씀바귀, 고들빼기 같은 먹을거리를 일찍이 발견해 여러 가지 요리로 개발했다. 민들레는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뿌리째 캐서 끓는 물에 소금을 한 술 넣고 데쳐낸다. 찬물에 식혀 양념에 무치면 쌉쌀한 민들레무침이 된다.

 

고들빼기와 함께 짠지를 만들기도 하고 튀김을 해도 좋다는 얘기도 있고 그 즙액이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하는 성질을 이용한 동양의학 이야기, 당나라 의학자 손사막의 고사도 소개한 다음 이렇게 맺는다. "이 정도면 우리 주변에 널린 민들레에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하지 않은가."

 

 

이런 식물들이 소개된다.

: 얼레지, 민들레, 복수초, 노랑제비꽃, 둥굴레, 앉은부채, 머위, 선씀바귀, 고사리, 수선화, 할미꽃, 금낭화, 미치광이풀, 띠, 산달래

여름 : 여뀌, 울금, 참나리, 피마자, 마름, 천남성, 꽃창포, 원추리, 하늘타리, 부들, 창포, 순채, 연꽃, 수련, 박, 마늘, 참깨, 파초, 명아주, 상사화, 범부채, 엉겅퀴, 호박, 벼, 콩, 마, 인삼, 쑥, 맥문동

가을 : 국화, 쑥부쟁이, 구절초, 갈대, 참당귀, 곰취, 투구꽃, 왕고들빼기, 금강초롱꽃, 억새

 

식물학자 오병훈은 고등학교 동기다.

읍내에서 벗어난 한적한 곳의 그 고등학교 오가는 길에서 혹은 읍내 극장 주변에서 모자를 비뚜름하게 쓴 그리운 그가, 나를 향해 "어이, 답설재!" 부르며 걸어오는 정겨운 모습이 보인다.

그의 학문적 성취가 더욱 빛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