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2》
정서웅 옮김, 민음사 2009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주선으로 온갖 세상을 다 경험한다. 심지어 헬레나와 만나 아들까지 낳으며 살았다.("구운몽"?)
제우스의 딸 헬레나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메넬라오스(Menelas)는 왕비 헬레나가 트로야의 파리스 왕자에게 유괴당하자 전쟁을 일으켜 토로야를 멸망시켰다.
파우스트 내게 아직 두 눈이 있는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름다움의 샘물, 철철 넘쳐나는 게 보이는가?
나는 무서운 여행길에서 가장 축복받은 선물을 가져왔구나.
지금껏 세계는 얼마나 보잘것없고 폐쇄돼 있었던가!
하지만 내가 사제가 된 이후로 어떻게 변했는가?
비로소 바람직한 것, 근본이 있고 영속적인 것이 되었다!
만일 내가 그대와 다시 떨어지게 된다면,
내 생명의 숨결이 사라져도 좋다! ─
일찍이 마법의 거울 속에서 날 매혹하고,
기쁘게 했던 아름다운 자태,
이 미인에 비하면 한낱 거품 같은 모상(模像)에 지나지 않도다! ─
그대야말로 내 모든 힘의 충동을,
정열의 정수(精髓)를,
동경, 사랑, 숭배, 광신을 바쳐야 할 상대일진저.
메피스토펠레스 (프롬프터의 구멍 안에서) 정신 차려요. 맡은 역할을 잊지 말아요! (100~101)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못하는 게 없다. 헬레나를 보고 넋이 나간 파우스트는 성주가 되어 헬레나를 아내로 맞는다.
그들의 모습을 그린 합창이 재미있다(252~253).
합창 누가 의심할까나!
왕비님이 성주님께
다정한 모습 보였다는 걸.
솔직히 말해 우리 모두
걸핏하면 포로의 신세.
일리오스 불행하게 함락되고
불안과 궁핍 속에
미로 같은 유랑의 길 떠난 이후.
남자의 사랑에 익숙한 여인은
이것저것 가리진 않아도
그 맛은 제대로 알지요.
금발의 고수머리 목동이든
검은 텁석부리 판 신(神)이든
기회가 오기만 하면
포동포동한 팔다리
아낌없이 맡겨버리죠.
벌써 두 분 가까이 다가앉아
서로 몸을 기대고 있군요.
어깨와 어깨, 무릎과 무릎을 맞대고,
손과 손 꼭 잡은 채
폭신하고 화려한 옥좌 위에서
몸을 흔들고 계시는군요.
지체 높은 분들이란
은밀한 즐거움도
여러 사람의 눈앞에
거리낌없이 보여주는가봐요.
이렇게 온갖 향락을 다 누린 파우스트의 죽음에 이르러 메피스토펠레스는 약속대로 그의 영혼을 가져갔는가? 그렇지 않다. 저 순결한 소녀 그레트헨의 사랑이 하늘의 은총을 받아 파우스트의 타락한 영혼을 구한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리러 온 천사들을 보고 약이 오른 채 죽어가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이 재미있다(373~374). 나는 이 작품에서 아무래도 메피스토펠레스가 제일 재미있다. 이건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나는 악마인가?)
메피스토펠레스 (무대 전면으로 밀려나서)
너희들은 우리를 저주받은 악령이라 비난하지만,
너희야말로 진짜 마법사이다.
사내고 계집이고 모조리 홀려대니 말이다. ─
이 무슨 빌어먹을 사건이란 말인가!
이게 바로 사랑의 원소라는 것인가?
온몸이 불구덩이에 있으면서
목덜미가 타는 것도 모르고 있다니 ─
이리저리 떠다니는 아이들아, 이리로 내려와서
귀여운 사지를 좀 속되게 움직여보렴.
사실, 엄숙한 표정이 너희에겐 어울리지만,
한 번만이라도 방긋 웃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그러면 나도 영원히 황홀할 텐데.
연인들이 서로 바라보듯이 하란 말이다.
입 언저리를 약간 빙긋하면 되는 거야.
키다리 아이야, 네가 날 가장 죽여주는구나.
그 수도사 같은 표정은 네게 어울리지 않는다.
좀 더 음탕한 눈길로 날 쳐다보아라!
속살을 약간 내놓고 다녀도 좋지 않겠니.
그 주름잡힌 옷은 너무나 점잖구나.
저것들이 돌아섰네 ─ 뒷모습도 볼 만한걸!
저 녀석들 정말 입맛을 돋우는데!
《파우스트》는 신비의 합창으로 막이 닫힌다(388~389).
신비의 합창 일체의 무상한 것은
한낱 비유일 뿐,
미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실현되고,
형언할 수 없는 것,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올리도다.
좀 지루하다는 느낌으로 읽었다. "이제 와서 읽으니까 그렇지!" 그런 말을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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