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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이야기

인생은, 두서없이 삭제되어 가는 기억 :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역사 사회에서의 노년 ②)

by 답설재 2022. 10. 4.

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홍상희·박혜영 옮김, 책세상 2002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인 묘사도 못마땅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만 할, 노인이 보기에 비참한 내용이지만 베게트에게서도 "종말의 비참한 쇠락을 통한 삶에 대한 비판"(보부아르)을 발견한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썼다.(298~299)

 

 

〈승부의 끝 Fin de partie〉에 등장하는 노부부는 쓰레기통에서 쓰레기통으로 전전하며 지나간 행복과 사랑을 언급하다가 모든 사랑과 모든 행복을 규탄하기에 이른다. 〈마지막 영화 La Dernière〉와 〈아! 아름다운 날들이여! Ah! les beaux jours!〉에서 잔인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는 기억의 풍화 작용, 우리 뒤에 남은 우리의 모든 삶의 풍화 작용이다. 추억은 두서없이 삭제되고 파손된 채로 생소하게 나타난다. 정말 과거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텅 빈 무에서 노망한 식물 같은 현재의 순간이 떠오를 뿐이다. 가장 익살스러운 점은 이런 낭패를 통해서 늙는 것은 배우는 것이며 발전하는 것이라는 신화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늙는다는 것, 그것은 "이 모든 작은 불행을…… 회상하면서 영원한 삶 속으로 천천히 굴러떨어지는 것…… 마치…… 과거에 그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설 《몰로이Molloy》에서 이야기의 초반에 이미 초로에 접어들어 있는 주인공은 점점 더 노쇠해진다. 한쪽 다리가 마비된다. 그리고 발가락들 중 반을 잃는다. 이렇게 신체 기능이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럭저럭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러다가 그는 더 이상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된다. 그는 목발을 짚고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닌다. 마침내는 기는 것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해체 과정 동안 그가 하는 주된 일은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조차 세월과 함께 부서져 모호하고 일관성이 없어진다. 그 기억들조차 잘못된 것들인지도 모른다. 인생, 그것은 단지 우리가 갖고 있는 기억이다. 그리고 기억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무가치한 것이 시간을 점유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간 곳이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동요한다. 그러나 목적지 없는 이 삶의 여행에서 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머무른다. 노년에 비추어 우리는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삶의 진실이란 그토록 번드르르함 속에 감추어진 노년일 뿐이다.

 

 

고대로부터 베게트까지 노년 묘사를 살펴본 내용의 정리 부분에서는 이런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299~302)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문명은 착취하는 계층과 착취당하는 계층간의 대립으로 특징지어진다."

"오로지 상류층만이 이야기를 한다."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들 자신들로서도 몹시 두려운 육체적 쇠약에 민감한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 도전하고 그들을 조롱한다."

"노인들은 노동력이 없었으므로 사회가 그들을 직접적으로 착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착취의 희생자였다."

"노인의 운명은 본질적으로 그들의 가족에 달려 있었다. 애정 때문에, 혹은 이목이 두려워서 어떤 사람들은 노인을 염려하거나, 적어도 올바르게 그들을 대우했다. 하지만 흔히 사람들은 노인들을 소홀하게 대했고, 양로원에 버리거나 집에서 내쫓아버렸으며, 심지어는 남몰래 죽이기도 했다."

"절대적인 무관심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지배 계층은 노인들을 과소평가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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