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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이야기

기막힌 인생 : 사이먼 윈체스터 《교수와 광인》

by 답설재 2022. 11. 15.

사이먼 윈체스터 《교수와 광인》 The Prufessor and the Madman

공경희 옮김, 세종서적 2000

 

 

 

 

 

 

불친 淸(nadeshiko)님이 지난 11월 11일(?) '오밤중'에 두 시간짜리 영화 《博士と狂人》을 보고 '비실비실'한 상태라는 얘기를 읽고 얼른 이 책을 찾았다.

어떤 책인지, 책날개에 잘 소개되어 있어 그걸 베끼기로 했다.

 

사이먼 윈체스트(이 책 저자)는 어느 날 우연히 영국 속어 사전 편찬의 권위자인 조너선 그린이 쓴 《해를 따라가기 Chasing the Sun》란 책에서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자원봉사자 중에 정신병에 걸려 살인을 저지르고 수용된 W. C. 마이너가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짧은 내용의 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19세기에 시작되어 20 세기서야 겨우 완성된 《옥스퍼드 영어 사전》 편찬을 위해, 언어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광기, 집착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어휘의 강한 역류에도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며 사전을 만든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들의 모습을 저널리스트의 눈과 역사가의 시각에서 완벽하게 그려내고 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 어떤 사전인가?

 

이 사전은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존슨이 만든 (기존의) 사전이 영어의 일부분을 보여줬다면, 어마어마한 분량을 선택해서 훌륭한 사전을 만들어낼 새로운 프로젝트에는 영어에 관한 모든 것이 담기에 될 터였다. 즉 모든 어휘와 뉘앙스, 미미한 차이를 보이는 모든 뜻과 철자, 발음, 어원의 변화 전부와 모든 영어 저술가들의 글에서 따온 최대한 생생한 인용문 전부를 담는 사전을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궁극적인 영어 사전의 모델로 여겨지는 이 사전 프로젝트팀은 하루도 빠지지 않는 70년이란 시간을 썼다.

대사전 제작은 1857년 11월 5일 가이 폭스 데이 기념행사가 벌어지던 날 런던 도서관에서 열린 (리처드 체네빅스 트렌치의) 연설로 시작되었다.

(......)

이제 트렌치가 요구하는 이 새로운 모험은 의미뿐 아니라 의미의 역사, 즉 각 어휘의 인생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사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문서를 죄다 읽어야 함을 의미했다. 즉 인용구를 달 어휘의 역사를 보여주는 모든 구문을 다 읽어야 했다. 기념비가 될 만한 크나큰 과제였다.(129~132)

 

모든 문서의 모든 구문을 다 읽어야 하는 이 작업에 감옥 속의 정신병자 마이너가 참여한 것이었다.

 

니콜라스 리체필드가 1582년 번역한 로페스 드 카스탄헤다의 『동인도 제도의 발견과 정복의 역사에 관한 첫 번째 책 First Booke of the Discoverie and Conquest of the East Indias』을 읽고 어휘 색인을 만들 때 그가 스리랑카 동부의 항구 도시 트링코말리를 향해(그리고 원주민 소녀들에 대해) 얼마나 향수를 느꼈을지 우리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173)

 

나는 이 문장을 읽고 한참 동안 그 광인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었다.

그 작업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휘의 뜻을 적절하게 정의하는 일은 섬세하고 독특한 솜씨를 요구하는 일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었다. 단어는 (명사를 예로 들 때) 우선 그것이 속하는 사물의 종에 따라 (예를 들면 포유류, 4지 동물) 정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종에 속하는 다른 것들과 구별되어야 한다(예를 들면 소과 동물, 암컷). 또 정의를 기술하는 문장에는 해당 단어보다 더 복잡하거나 덜 알려진 어휘가 들어가서는 안 된다. 만약 어느 한 어휘의 의미가 광범위할 경우 ─ cow는 넓은 범위의 뜻을 지키고 있는 반면, 'cower(움츠리다)'는 기본으로 딱 한 가지 뜻만 갖는다 ─ 모든 의미들이 다 언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의를 내리는 문장에 든 어휘는 사전의 다른 부분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즉 사전을 읽는 독자가 이 책의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어휘와 만나서는 안 된다. 용케도 이런 규칙을 지키고, 간결하면서도 우아하게 글을 써야 하는 부담감을 감내한다면,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이 자기 일에 충실한다면 적절한 정의가 내려질 수 있었다.(184)

 

그럼 미친 사람 마이너는 그 일에 적절한 사람이었는가? 그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나 만들려고 태어났고 미친 사람이 되었는가?

 

좀 이상한 얘기지만, 그가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사전 편찬에 그토록 집착하게 된 데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정신병자 수용소에서 밤마다 겪었던 끔찍한 고통이 우리에겐 커다란 이익이 되었다. 그는 정신 이상자였는데, 그것이 우리에겐 다행스러웠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잔인한 아이러니다. 그 생각을 하면 인생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 느껴진다.(254)

 

그럼 그렇게 해서 그는 용서를 받거나 사람들로부터 제한된 칭송이라도 받았을까?

 

더욱이 마이너는 빠른 속도로 시력을 잃어갔다. 벌써 몇 달째 책을 읽지 못했다. 이제 그에게 기쁨의 원천은 없었고, 그러므로 생을 붙잡고 살아갈 이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같은 해 날씨가 매서운 이른 봄, 그는 산책을 나갔다가 감기에 걸렸고, 그것이 기관지 폐렴으로 악화되어, 결국 잠자는 중에 평화로이 눈을 감았다. 1920년 3월 26일 금요일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257)

 

 

淸님께서 오밤중에 영화를 감상하고 비실비실한 시간을 가진 덕분에 이 좋은 책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그새 절판이 되었다. 좋은 책이라고 사람들이 많이 구입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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