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원 시인의 블로그 《시인의 집》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박 시인은 지난해 여름 시인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제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노벨상보다 빛나는 순금빛 상을 받다
제 시를 다소 과하게 칭찬해주시면서 제 시집을 소개해 주셨는데 보답글 하나 없이 지내는 것도 무례라는 생각으로 몇 자 적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예전에 제 시 “내 안에 머물던 새”를 블로그에 올려주셨지요. 그런데 제 시 밑에 덧글로 적어 주셨던 지금까지 ‘상 받은 것도 없다는 시인’이라는 문구가 그때 이후 언제나 제 머리를 따라다녔습니다. 저는 평소에 상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며 살아보지를 못했습니다. 당연히 초등학교 2학년까지 우등상이나 개근상 몇 개 받은 것 빼고 이후로는 한 번도 상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시집 속에 “나에게 행복이라는 것은”에 나오듯이 부모님이 그때 다 돌아가셨거든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한달 동안 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랫동안 못 갔었는지는 이유를 아직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한 달의 공백을 마치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는데 그 이전까지 그렇게 재미있던 공부가 그야말로 하나도 모르겠더라구요. 지금 같았으면 내가 공부가 어려워진 이유를 알고 와신상담 다시 공부를 시작해봤겠지만 초등학교 2학년이 뭘 알았겠어요. 공부를 못하니 우등상은 당연히 더 이상 못 받게 되었고 학교 가기 싫어 가끔 땡땡이를 치니 이후로는 개근상조차 인연이 멀어졌던 겁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주신 “상 받은 것도 없다는 시인”이란 표현을 마주하는 순간 그동안 제 인생에서 못 받았던 상을 한꺼번에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의도는 수많은 문학상 중에 한국의 웬만한 시인 작가라면 한두 개 얻어 받게 마련인데 그 흔한 상 하나도 못 받을 정도 수준 이하 시인이란 뜻은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수많은 문학상 중에 이정도의 이런 시인에게 줄만하다고 생각이 미쳤던 사람 하나 없었을까 하는 한탄으로 저는 느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선생님의 표현 의도가 맞는 거라면 내 생에서 이렇게 순수하게 빛나는 순금빛 상장을 누구한테 다시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무슨 이유로 저에게 상 받을 기회가 주어질지는 혹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상 따위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설사 아무리 큰 상이 언젠가 주어지더라도 선생님께서 저에게 주신 그 순금빛 상의 가치를 뛰어넘을 만한 상이 있게 될까 하는 의문은 갖게 됩니다.
저는 늘 수많은 독자가 아니라 제 작품을 마음을 다해 읽어주는 선생님 같은 독자 한두 분 계시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한때는 글을 포기하고 싶었고 실제로 포기하며 살기도 했지만 선생님 같은 분들 때문에 또다시 오늘도 시를 쓰게 됩니다.
요즘 워낙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리 큰 출판사도 아니고 영업망도 변변치 않은 탓에 제 시집도 조만간 책방에서 사라지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제 시를 접하지는 못해도 이 코로나 시기에 어렵게 살아가는 분들에게 다가가서 조금이나마 힘을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지나온 제 삶에 온갖 일들을 하면서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마다 저는 프랭클린자서전에 나오는 몇몇 구절과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몇몇 장면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거대한 바다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장면과 “노동은 인간을 덜 늙게 하고 반면 게으름은 인간을 더 빨리 노쇠하게 한다”는 프랭클린자서전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참으로 사소한 것으로 느껴졌고 도무지 참지 못할 것 같던 힘겨움도 이내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렇듯 제가 누군가의 문학적 영혼에서 도움을 받았듯이 제 시집, 그 안의 싯구 하나라도 누군가의 영혼으로 들어가 때로는 그들 운명의 지표가 되기도 또 가끔은 힘들 때 그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시집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물론 이는 지나치고 과도한 욕심이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집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어느 날》(답설재의 감상문)
☞ https://blueletter01.tistory.com/7640167
원문은 박남원 시인의 블로그 《시인의 집》에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upio11/222440586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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