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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이야기

민구 「걷기 예찬」

by 답설재 2022. 11. 27.

 

 

 

걷기 예찬

 

 

민구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걸을수록 나 자신과

멀어지기 때문이다

 

제중 조절, 심장 기능 강화,

사색, 스트레스 해소 등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걷기란 갖다 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제는 만 오천 보 정도 이동해서

한강공원에 나를 유기했다

 

누군가 목격하기 전에

팔다리를 잘라서 땅에 묻고

나머지는 돌에 매달아 강물에 던졌다

 

머리는 퐁당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다시 붙어 있었고

나는 잔소리에 시달려서 한숨도 못 잤다

 

걷기란 나를 한 발짝씩

떠밀고 들어가서 죽이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걸을 때도 있었다

 

나와 함께 걷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과 더 가까워지리란 믿음이 있거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걷기를 예찬했다

 

그런 날에는 밤 산책을 나가서

더 멀리 더 오래 혼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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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구  2009년 『조선일보』등단.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당신이 오려면 여름이 필요해』.

 

 

☞ 『현대문학』2022년 10월호(162~163).

 

 

'정말 그렇지. 산책을 나가는 건 나를, 내 마음을 버리러 가는 거지. 혹은 나를 찾아 돌아오려고 나가는 거지.'

그 정도로 생각하면

"누군가 목격하기 전에 팔다리를 잘라서 땅에 묻고 나머지는 돌에 매달아 강물에 던졌다"

"머리는 퐁당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다시 붙어 있었고 나는 잔소리에 시달려서 한숨도 못 잤다"

는 건 심한가?

너무 재미있는 건 아닐까? 말하자면 재미가 너무 있는 것.

아니지? 저 시인에겐 그만큼이나 심각했다는 거지? 사람마다 다르겠지? 때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

시인의 얘기를 다 이해할 수야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