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여백의 예술》
김춘미 옮김, 현대문학 2014
이우환의 책은 네 권째이다. 《시간의 여울》(1994)은 이슬·수정 같은 에세이들이었고 《멈춰 서서》(2004)는 바로 그 느낌의 시집, 《양의의 예술》(2014, 심은록 엮음)은 그의 예술에 관한 대담집이었다. 그의 예술세계가 겨울 햇살 같다고 생각되었다.
이 책 《여백의 예술》과 함께 네 권을 따로 분류하지 않고 한 군데 모아놓고 있었는데 《여백의 예술》은 읽지 않은 채였다. 이건 분명히 개론서가 아닐까 싶어서 선뜻 읽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이번에 비로소 이 책을 읽으며 과연 이우환다워서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그것은 여섯 장(章) 중에서 첫째 장에서였다.
· 여백의 예술 · 무한에 대해 · 중간자 · ......
이우환은 어려운 것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쉬운 것을 논리적·현학적으로 설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논리·현학이 간결해서 한 문장 한 문장이 명쾌하고 편안하다. 성취감을 준다.
에세이 한 편 한 편은 각각 다른 것을 이야기하지만 어느 에세이에서나 그, 그의 작품이 보이게 된다.
이 책이 개론서일 것으로 짐작하고 '나중에...' '나중에...' 하며 8년 여 미루어 왔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여섯 개 장(章)은 '여백의 예술' '여러 작가들' '예술의 영역' '새로운 표현의 장을 위해' '사물과 말에 대해' '화집의 단장'으로 되어 있다.
'여러 작가들' '예술의 영역'에서 다소 지루한 글이 보이긴 해도 대체로 집중해서 읽었다.
나에게는 그의 작품이 없다(당연히). 그렇긴 하지만 나는 늘 그의 작품을 생각하고 있다. 특히 그의 글을 읽을 때는 여러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일이니 책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이우환은 철학이 분명한 예술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생각과 글은 항상 고고하고 분명하고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여백의 예술
예술은 시이며 비평이고 그리고 초월적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는 자기의 내면적인 이미지를 현실화하는 길이다. 두 번째는 자기의 내면적인 생각과 외부 현실을 짜였는 길이다. 세 번째는 일상의 현실을 그대로 재생산하는 길이지만 거기에는 암시도 비약도 없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예술로 여기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것은 두 번째의,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길이다. 거기에서는 내가 만드는 부분을 한정하고 만들지 않는 부분을 받아들임으로써 서로 침투하기도 하고 거절도 하는 다이내믹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관계 작용에 의해 시적이며 비평적이며 그리고 초월적인 공간이 열리기를 바란다.
나는 이것을 여백의 예술이라 부른다.
그런데 나는 여러 화가의 화면 속에 보이는, 그저 빈 공간을 여백이라고는 느끼지 않는다. 거기에는 무언가 리얼리티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큰 북을 치면 소리가 주위 공간에 울려 퍼지게 된다. 큰 북을 포함한 이 바이브레이션의 공간을 여백이라 하고 싶다.
이 원리와 같이, 고도의 테크닉에 의한 부분적인 붓의 터치로 하얀 캔버스의 공간이 바이브레이션을 일으킬 때 사람들은 거기에서 리얼리티가 있는 회화성을 보게 되리라. 그리고 나아가 프레임이 없는 타블로는 벽하고도 관계를 맺게 되면, 회화성의 여운이 주위 공간에 퍼질 터이다.
이러한 경향은 조각에서 한층 더 선명하다. 예를 들어 자연석과 뉴트럴한 철판을 어울려서 공간에 강한 엑센트를 주면, 작품 자체라기보다는 언저리의 공기도 밀도를 지니게 되고 그 장소가 열린 세계로서 선명하게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린 부분과 그리지 않은 부분, 만든 것과 만들어지지 않은 것, 내부와 외부가 자극적인 관계로 서로 작용하고 울려 퍼질 때, 그 공간에서 시나 비평이나 초월성을 느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예술작품에 있어서의 여백이란, 자기와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열리는 앙양된 공간을 말한다.
올해(2022) 《양의의 표현》이 출간되었다. 거기에는 《현대문학》에 연재된 에세이 등이 포함되어 있을 것 같다. 그런 글도 다시 읽겠지만 기대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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