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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이야기

아모스 오즈 장편소설 《유다》

by 답설재 2022. 9. 21.

아모스 오즈 AMOS OZ 장편소설 《유다 JUDAS》

최창모 옮김, 현대문학 2021

 

 

 

 

 

 

때로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부엌에서 살금살금 복도로 나가서 그녀의 방문 앞에서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몇 분 동안 집중하노라면 윙윙거리는 것 같은 소리나 나지막하게 바스락거리는 소리, 단조롭고 규칙적으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닫힌 문 너머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방 안에 도대체 무엇이 있을지 상상 속에서 그려 보려고 했는데, 몇 번이고 복도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그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어도, 한 번도 거기에 초대받은 적이 없었고 슬쩍이라도 그 안을 (...) (86)

 

길을 걸으면 몸보다 머리가 앞서 나가는 어설픈 사내 슈무엘 아쉬는 연인 야르데나를 따분한 수문학자 네세르 샤르쉡스키에게 빼앗기고 석사학위 논문 주제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도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사실 같아서 포기해버리고 시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아탈리야 아브라바넬의 집에 알바를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내 그녀에게 빠져버린다.

아니, 그 얘기가 중심은 아니다.

이스라엘 건국과 '거룩한 땅' 팔레스티나의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관계, 유대인과 나사렛 예수의 관계를 이야기한 소설이다.

그 두 가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가지만, 나는 저 어수룩하고 불행한 젊은이 슈무엘이 중년 여인 아탈리야에게 연정을 느끼고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참 어설픈 사내의 사랑 이야기에 빠져서 읽었다.

 

물론 이스라엘 건국을 반대한 유일한 인물,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그 땅에서 함께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는 걸 주장한 쉐알티알 아브라바넬(아탈리야의 아버지) 이야기도 흥미롭긴 하고, 예수와 유다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총각 슈무엘과 과부 아탈리야의 사랑(혹은 욕정)은 곧 잊히고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의 관계 해석, 예수와 유다의 이야기는 영영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내가 그를 죽였어. 그는 예루살렘으로 오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내가 그를 억지로 예루살렘으로 끌고 왔지. 여러 주 동안 나는 그의 마음에 호소했었지. 그는 의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자꾸만 내게 물었고 또 다른 제자들에게 물었지. 자기가 정말 그 사람인지? 그는 끊임없이 망설였어. 자꾸만 위로부터 징표를 구했지. 자꾸만 절실하게 징표가 하나 더 필요하다고 느꼈어. 마지막 징표 하나만 더. 그런데 나는, 그보다 나이도 많고, 그보다 침착하고 그보다 세상살이에 대해서도 더 잘 아는데, 나는, 망설이던 순간에 그의 눈은 내 입술만 바라보았고, 난 그에게 말하고 또 말했지. 당신이 그 사람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사람인 걸 당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또한 당신이 그 사람임을 압니다. 그리고 난 아침저녁으로 또 그다음 아침저녁에도 말했지. 예루살렘에서 꼭 예루살렘에서만 가능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야 한다고. 나는 일부러 그가 시골에서 베풀었던 기적들의 가치를 축소해 말했고, 그의 기적들에 관한 소문들이 갈릴리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손을 대 환자들을 치료하고 온갖 기적을 일으키는 많은 자에 관한 다른 소문들과 두루뭉술하게 섞이도록 놔두었어. 소문들은 그렇게 몇 주일 동안 언덕 사이로 불어대다가 잦아들어 버렸지.(399)

 

십자가 사건은 계획된 것이었다(266)는 얘기였다.

 

유다는, 자기 삶의 이유와 목적이 자기 눈앞에서 부서지는 것을 보면서, 자기 손으로 자신이 사랑하고 존경했던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다는, 그곳을 떠나 스스로 목을 매고 말았다. (...) 그렇게 첫 번째 기독교인이 죽었다. 마지막 기독교인이. 유일한 기독교인이.(229)

 

숨죽이고 읽은 부분이 아주 많아서 이 책을 나의 '100권'에 넣어두기로 했다. 예수와 유다에 대해 생각이 깊어지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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