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일본 여자들과 미국 여자들

by 답설재 2020. 10. 6.

 

 

찰스 부코스키라는 괴짜 작가가 쓴 소설 『팩토텀』을 읽었습니다('팩토텀'을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① 잡역부 ② 막일꾼 ③ 막일을 하는 하인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3월에 읽었으니까 그때 우리는 이미 코로나에 휩싸이고 있었던 것인데 지금 생각하니까 마치 옛날 옛적에 읽은 느낌입니다.

 

"같이 들어가서 한잔 하고 가요."

"뭐라고? 술 먹고 감옥에 갔다 나오자마자 바로 또 술을 마시고 싶다는 얘기냐?"

"바로 이럴 때가 술 생각이 가장 간절한 법이에요."

"네 엄마한테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술을 마시고 싶었다는 얘길랑은 절대로 하지 마라."

아버지가 경고했다.

"여자도 먹고 싶네."

"뭐라고?

 

소설은 아주 난감한 것이어서 이게 부자간에 나누는 대화이니 말해 뭣하겠습니까?

나는 독후감 끝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난처한, 너무나 노골적이고 음탕한 표현이 수두룩했습니다. 이 책을 어디에 두어 보관해야 할지 그게 참 곤혹스럽습니다.”

 

부코스키의 책은 이외에도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말년 일기), "호밀빵 샌드위치"(자전적 소설),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시집), "말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시집),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시집), “창작 수업”(시집) 등을 읽어보았는데, 막무가내로 말해버리면 “아주 개판이구만” 할 수도 있는데 순전히 그렇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개판이라면 아버지가 더 개판이었습니다.

이 작가의 책들은 전체적으로는 슬픔에 싸여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 소설에는 이런 대화도 나옵니다.

 

"사랑에 빠져본 적 있어요?"

"사랑은 진짜 인간들이나 하는 겁니다."

"당신도 진짜처럼 들리는데요."

"난 진짜 인간을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싫어한다고요?"

"그런 사람들을 증오하죠."

 

이런 장면도 봤습니다.

 

그다음에 일어난 사건은 일본인 여자 한 명이 고용된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주 이상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어려움과 고통의 날이 결국 다 지나가고, 어느 날 어떤 일본 여자가 나를 찾아와 그후로 둘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행복하게라기보다는 '편안하게', 그리고 깊은 이해와 서로의 관심 속에서라는 게 더 적당하겠다. 일본 여자들은 아름다운 골격을 갖고 있었다. 머리통의 모양, 그리고 연령에 걸맞은 피부의 탄력은 사랑스러웠다. 한마디로 온몸의 가죽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미국 여자들의 경우는 세월이 흐를수록 얼굴이 늘어져서 결국에는 개판이 되어버린다. 궁둥이도 마찬가지로 개판이 돼서 꼴사납게 변한다. 두 문화가 가진 힘 역시 매우 달랐다. 일본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이해했다. 그걸 지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력을 갖추고 있었다. 미국 여자들은 오로지 오늘만을 알았다. 그리고 어쩌다가 하루만 일이 잘못되어도 완전히 산통을 깨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나는 새로 온 그 여자에게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

 

나는 이 장면을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걸 읽은 일본 여자분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국 여자분들은 기분이 어땠을까?’

‘한국 여자분들은?’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부코스키는 여자 생각을 특별히 많이 한 것 아닐까?’

‘그렇다면 그건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그걸 왜 하필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으로 구분하려드느냐고 묻진 말고.)

‘부코스키가 여자 생각을 많이 한 것이라면 여성분들은 부코스키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나이가 들면서 많이도 변했고 지금도 좀 변해가고 있지만 잡념에 대해서는 별로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다 잡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게 내 블로그이니 내 마음대로 이런 걸 글이라고 썼지만 다른 데라면 가당하기나 하겠습니까?

사실은 이러고저러고 할 것도 없습니다.

찰스 부코스키도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지금은 아예 죽고 말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