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데일리메일은 지난 14일, "시험이 주는 중압감을 나쁜 것으로 본다면, 잠시 한국 학생들을 동정하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전제하고, 일시에 수십만 명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둘러싼 우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분석했다.
먼저, 수험생에게 길을 양보하기 위해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들이 출근시각을 1시간 늦추고, 차량이 통제되며, 지각생을 위한 경찰차와 오토바이가 곳곳에 배치되는 모습을 전했다. 또 영어 듣기평가 때문에 항공기 이착륙이 금지되는 등 전국이 "침묵 상태('hush' mode)"가 되는데, 이러한 '배려'는 사실은 어린 학생들에 대한 '압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에서는 수능 점수가 좋으면 최상의 대학은 물론, 좋은 직장과 결혼 등 평생을 좌우할 열쇠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우리의 시각(視覺)이다. '수능현상'에 거의 익숙해져서 오히려 당연하게 여긴다. 그 기사를 '역수입'하여 전한 신문을 봤더니 마치 흥미로운 '해외토픽'을 소개하듯 했다. 실제로 해외토픽감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면 우리 교육을 조롱거리로 본 것일 수도 있다.
언론에서는 교육행정을 그렇게 여기고 싶은 의향을 굳이 부인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가령 "수능 직전까지 진도 나가라는 선행학습금지법"이라는 기사는, 수능은 당연히 지상 목표인데 학교·학생의 노력에 대해 정부는 훼방이나 놓고 있다는 식이다. "선행학습금지는 反교육 포퓰리즘" "곳곳에 선행학습 광고, 웃음거리가 된 금지법"이라고 대놓고 반박하고 심지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라고도 표현한다.
언론만 탓할 수도 없다. 라가르드 IMF 총재가 한국과 핀란드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성적이 늘 1·2위인 것을 칭찬하자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한국 학생들은 8시부터 11시까지 공부한다"고 했고, 라가르드가 이렇게 반문했다. "겨우 3시간 공부로?"
김 총재는 오전 11시가 아니라 오후 11시까지라고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코미디 같은 대화의 주인공이 된 그는, 지난 4일, 교육개혁 심포지엄에서 "우리는 오래 공부하는 것이 문제다!" "만점자가 아니라 창의력을 가진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육자들의 자조(自嘲)도 심하다. "수학은 발견의 즐거움이 중요하다!" "강의가 아닌 대화로 가르쳐야 한다!" … 소중한 '교육비법'들이 소개된 세계수학자대회 때 한 참석자가 이렇게 전했다. "주어진 문제를, 일정한 시간에, 실수하지 않고, 남보다 빨리 풀게 하는데 열중하는 교육으로는 수학영재는 만들 수 있지만 필즈상 수상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세계수학자대회조차 '일과성 행사'로 지나가고 '노벨상 시즌'이 되자 청색 LED를 발명한 일본 과학자 세 명이 한꺼번에 수상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다. 예년에 비해 조용한 우리 언론을 살펴보고 "기가 죽은 것 같아서 딱하다"고 하자 어느 교육학자가 이렇게 속삭였다. "일본에서 우리를 보고 '너희 나라는 교육을 그따위로 하기 때문에 아직 멀었다!'고 하지 않겠어요?"
지난해 이맘때쯤에는 스웨덴 교육계로부터 이런 혹평이 들려왔다. "한국교육은 너무나 교과서와 시험 중심이다" "학생이 억눌려 있어서 장기적인 부작용이 우려된다" "한국에서 배울 것은 끝없는 공부와 치열한 경쟁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재미있는 얘기처럼 늘어놓았지만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할 수 있거나 그렇지 않은 명백한 사실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면 괜찮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쓰라린 평가로 삼아야 한다.
모든 문제를 꺼내 다시 설계해야 한다. 수능은 왜 이렇게 치러야 하는가? EBS 수능방송은 왜 필요한가? 문항출제는 꼭 교과서, 수능방송교재대로 해야 하는가? 논술고사는 바람직하지 못한가? 공부를 덜 시키고 경쟁을 덜 시킬 수는 없는가? 한 줄을 세우면서도 굳이 "최선을 다하면 누구나 된다!"고 말해야 하는가?……
이야기도 하지 말아야 할 것처럼 여기는 문제부터 꺼내놓고 토론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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