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필즈상, 우리도 받았어야 했나? (2014.8.25)

by 답설재 2014. 8. 24.

세계수학자대회! 120여 개국 5000여 명의 수학자가 찾아온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하이라이트는 필즈상 시상이었다. 40세 이하의 수학자에게만 준다는 이 상을, 미국 13명, 프랑스 12명, 영국 7명, 러시아 6명, 일본 3명, 중국, 베트남 등 11개국이 각 1명씩 받았지만 우리는 아직 수상자가 없다. 언론은 그것이 의아하고 억울하다는 듯했다. 실적을 충분히 쌓아 자격을 갖추었으니까 이미 받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한국인, 수학 노벨상 왜 없나” “올림피아드 석권에도 필즈상은 제로” “수학 우등생 한국의 미스터리”……

 

그럴 만도 하다. 미국·영국·일본 등 OECD 회원국 34개국, 중국·브라질·러시아 등 비회원국 31개국이 참여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는 세계 최고의 교육을 자랑하는 핀란드와 함께 늘 1~2위였고,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성적에서도 우리가 1위였다. 뿐만 아니다. 42개국이 참여한 최근(2011년)의 국제수학·과학성취도평가(TIMSS)에서도 초등학생(4학년)은 2위, 중학생(2학년)은 1위였고, 중·고교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도 2012년에는 1위, 2013년에는 2위를 차지했다.

 

찜찜한 구석이 있다면 학생들이 수학을 “아주” 싫어한다는 것뿐이다. PISA에서는 수학에 대한 불안감은 아주 높은 반면 수학의 효능에 대한 관점이나 자아개념은 최하위였고, TIMSS에서도 수학 흥미도는 42개국 중 41위, 자신감은 38위였다. 성적은 최고이면서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 아직 필즈상을 받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가 교과서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교과서는 당연히 중시해야 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두 가지 관점이 있다. 교과서는 성전(聖典)이고 그 내용은 금과옥조(金科玉條)니까 군소리 없이 섭렵시키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여기는 전통적·관습적 관점이 지배적이지만, 교과서는 학습자료, 학습도구일 뿐이라는 관점도 있다. 세계적으로 앞서가는 나라들 중에는 후자의 입장이 된 경우가 훨씬 많다.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1970년대부터 그런 관점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다만, 대입 준비라는 현실적 장애 때문에 변화를 외면하고 교과서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설명)하는데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

 

학원에서도 그렇게 하고. 수능방송, ‘인강(인터넷 동영상 강의)’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창의적 활동, 토론, 협력학습 같은 건 구경하기도 어려워서 흥미는커녕 지긋지긋할 수밖에 없는 것이 수학이다. “죽으나 사나” 주어진 문제를, 정해진 시간에, 틀리지 않고, 남보다 먼저 풀어야 하는 케케묵은 관점을 고수하고 있고, 거기에 끈질기게 그 경쟁을 부추기는 세력도 있다.

 

더러 수학 교과서의 문제들을 왜 다 풀어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희한한 아이가 나온다. 교과서의 공식대로 풀지 않고 괴이한 방법으로 풀었다고 감점을 받고, 학원의 선행학습을 하지 않고는 결코 특목고에 입학할 수 없다는 ‘협박’도 받는다. 이게 바로 ‘불편한 진실’이다. 그렇게 배워서 수학자보다는 의사가 되는 것을 좋아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 또한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하여 우리는 충분히 배웠다. 필즈상은 차차 받으면 된다. 기계화·정형화한 수학교육을 합리화하고, 그런 선행학습을 시키고 싶어 핑계를 대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이 대회도 지나가고 나면 잊힐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소중한 교훈은 기필코 실천해야 한다. “입시도구로 전락한 교육, 공식을 달달 외우는 교육을 탈피하고 호기심을 갖게 해야 한다” “지겨운 문제풀이가 호기심을 망친다!” “수학을 게임처럼 즐기게 하라” “발견의 즐거움을 가르쳐야 한다” “실생활과 관련지어 강의 아닌 대화로 가르쳐라”… 고등과학원의 원로 한 분은 이렇게 대변했다. “이런 교육으로 어떻게 필즈상을 기대하나? 토론학습을 해야 한다. 교과서나 교사보다 더 깊이, 더 멀리 갈 수도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