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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교육이 뭔지나 아는가! (2014.7.28. 월요논단)

by 답설재 2014. 7. 27.

 

 

 

 

 

 

 

교육이 뭔지나 아는가!

 

 

 

  이런 교육으로는 한계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 확신을 가지고 하는 장담(壯談)이다. “이런 교육”이란 학생은 물론 학부모, 교사 등 이른바 교육공동체의 거의 누구나 불편하고 힘들고 부담스러운 교육이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4시간이나 공부한다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우리 교육이다. 그런데도 그 시간이 자꾸 늘어날 만큼 무한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은 체력, 어머니는 정보력과 기동력, 할아버지는 재력을 갖춰야 하고, 아버지는 무관심할수록 유리하다”는 농담이 정말로 농담인지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선행학습의 폐해를 지적하며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던 학자마저 강남으로 이사를 하더니 자녀의 성적이 오르긴 하더라고 고백하는 것이 현실이다.

 

  원론적으로는 “지식정보화사회다!”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걸핏하면 “이론과 다른 현실”을 내세우고, 좋은 책, 허다한 방법들을 제쳐놓고 “내 강의를 잘 들어라!”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하다!”면서 학생들에게는 일방적·획일적 방법을 적용한다.

 

  더 드러날 문제점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되돌아가 현실을 이론에 맞춰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일선 교육자, 교육행정가, 교육학자는 물론이고, 언론도 반성해야 한다. 교육감 선거가 끝나자마자 “보수 후보, 몇 명씩 우르르… 예견된 자멸” “교육현장 대혼란 예고”와 같이 교육철학·교육정책보다 물리적 ‘단일화’가 승리의 길이라는 비교육적 관점을 앞세운 것은, 국민의 눈과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교육철학을 보여주었는지, 이야기할 만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기나 한지, 혹은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당연히 알아주겠지” 하는 터무니없고 구태의연한 태도를 가지지 않았는지, 교육의 눈으로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니까 “親전교조 교육감들도 ‘경쟁의 가치’ 외면해선 안 된다”는 엉뚱하고 어이없는 주문을 하는 것이다.

 

  경쟁의 가치? 누가 어떤 경쟁을 벌여야 하는지부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소화 잘되는 비빔밥 먹고 잠도 안자고 공부해서 교수 되고 법관 되고 장관 되었다”고 하면 얼마나 무책임하고 가혹한 관점인가! “몰라서 그렇지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엄청난 사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학자는 다시 미국 가서 도대체 몇 명이 그렇게 하고 있는지 조사해 오게 해야 한다.

 

  교육과 경쟁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하필이면 밥 먹고 좀 쉬어야 할 점심시간에 책을 읽혀야 하는지, 그런 학교를 표창하는 것이 옳은 평가인지, 방학에도 학생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그게 경쟁이고 교육인지 따져봐야 한다.

 

  경쟁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르치는 경쟁을 해야 하고 개인별 경쟁은 학생 개개인에게 맡겨야 한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점심시간, 방학기간에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경쟁은 그만두고 정해진 시간에 어떻게 해야 더 잘 가르칠 수 있는지, 교육 프로그램, 교육방법에 관한 교육적인 경쟁을 해야 한다. 경쟁으로 학생을 가혹하게 다루는 교육자는 비난 받아야 한다.

 

  이런 교육으로는 한계에 이른 것이 분명한 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여건은 충분하다. 우선 학생들이 싫어한다. 따분하게 여긴다. 그것은 매우 다행한 조건이다! 저 학생들이 관심과 흥미를 가지게 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가령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지루한 강의를 듣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영화를 제작하고 연극·역할극을 꾸미고 토론회를 개최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런 것을 일상적인 교육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이른바 ‘핵심역량’을 마음껏 길러줄 수 있게 된다.

 

  바꿀 것은 많다. 다 바꾸면 된다. 변화의 관점과 척도는 학생들의 행복이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조차 행복할 수 없다면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지금 행복하게 지낼 줄 알아야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 그게 교육이다. “죽어라 공부하면 이 중에 한두 명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식의 교육은 교육도 아니다. 벌거벗겨진 인간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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