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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학교는 바빠야 좋은가? (2014.6.30)

by 답설재 2014. 6. 30.

 

 

 

 

 

 

 

 

 

학교는 바빠야 좋은가?

 

 

 

  학교는 바쁘다. 당연한 현상인가? 학생들을 가르치자면 바쁘기 마련이고, 바쁠수록 잘 가르치는 것인가? 교육자가 한가하다면 잘못된 것이고 분주한 것이 기본적인 덕목인가? 교육부, 교육청에서는 교육현장이 때로는 조용하고 여유로울 수도 있지만 대체로 바쁘게 돌아가기를 기대하는가? 교원들이 지금 한가하다고 보는가, 눈코 뜰 새 없다고 보는가? 현장의 현재 상태에 만족하는가, 아니면 ‘뭐가 바쁘지?’ ‘바쁜 것도 문제인가?’ 하고 의아해하는가?

 

  교사들에게는 전화 한번 하기도 조심스럽다. 수업중이라면 당연하지만 수업 후에도 늘 분주하기 때문이다. “바쁘시죠?” 하고 묻는 것이 의례적이고, 아예 “얼마나 바쁘세요?” 하고 인사하는 사람도 흔하다. 교장․교감, 장학사 등 행정가들은 “좀 바쁘지만… 말씀하시죠.” 하며 생색을 내고, 그렇게 하면서 권위적인 면모를 과시한다. 그게 어째서 권위적이냐고 하겠지만 이쪽에서 보면 그렇다.

 

  행정가로서 새 출발을 하는 교감․장학사가 지침이 될 조언을 요청해오면 “교사들에게 바쁜 티를 내지 않으면 일단 친근하게 여기게 되고 그것이 칭송의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간단한 일이니까 꼭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도 곧 다른 행정가들처럼 바쁜 티를 내게 되고 실제로 바쁘게 살아가면서 그 다짐조차 까맣게 잊고 만다. ‘존경하는 선배’ ‘인정받는 행정가들’이 “이 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으로서의 ‘전범(典範)’이기 때문이다.

 

  바쁜 행정가, 바쁜 교사들은 ‘내가 이 나라 교육을 위해 이만큼이나 열성적이어서 저 학생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행정가, 그런 교사에게는 우선 동료들조차 다가가기가 어렵고 결국 학부모나 학생조차 용기를 내야 접근할 수 있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당연히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이심전심으로도 얼마든지 통하고 사랑을 주고받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학교교육이 목표 달성을 우연에 맡기는 식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더구나 그렇게 분주한 상황에서는 일사불란한 기계적 활동, 매뉴얼에 따른 일방적․획일적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수준은 높지 않아도 실패할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식전달교육, 강의식·주입식교육이 판을 치게 된다. 예전에 A. 토플러가 산업시대 교육의 특징을 “시간엄수, 복종, 끊임없는 반복”이라고 한 것도 다 그런 교육의 폐단을 지적한 것이었다.

 

  에둘러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학생들에게는 다가가고 싶은 교사가 필요하다. 한가하고 여유로운 교사,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거기에 있는 교사가 좋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겉으로라도 한가하다고 해주는 교사라야 한다. 수업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방송강의식, 옛 학원식 ‘열강(熱講)’은 교사에겐 힘이 많이 들고 재미는 없으니까 교사 대신 학생들이 설명하는 수업이 더 좋다. EBS 방송을 관찰해보면 우리나라 교실은 늘 교사가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곳이지만 다른 나라 수업장면은 아프리카라도 그렇지 않다. 학생들이 움직인다.

 

  목표 제시→내용 설명→평가 등 일련의 활동이 일방적으로 이어지는 교사주도 수업을 버리고 학생들이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학생들끼리 묻고 답하고 토론하는 교실로 바꿔야 한다. 마법사처럼 빈틈없는 시범으로 일관하는 과학수업 대신에 왜 그 도구 그 약품을 써야 하는지부터 토의하는 수업, 실패가 다반사인 실험실습을 해야 한다. 제한된 시간에 더 많은 문제를 틀리지 않고 남보다 먼저 푸는 수업을 그만두고 토론이 벌어지는 수학수업을 해야 한다.

 

  “학교는 좋은 일이면 무엇이든 다 해야 하는가?” “중요하지 않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석해봐야 한다. 복잡성 관리(complexity management)를 통해 교사들의 일을 단순화해야 한다. 행정이란 교사들이 중요하지 않은 일을 버리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도와주는 일이어야 한다. 행정이 현장의 위에 있는 관료주의를 버리고 수업지도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이고 교육행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