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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유(2014.3.31)

by 답설재 2014. 3. 31.

 

 

 

 

“왜 학교에 가느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행복한 일이어서?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한때 행정가들이 즐겨 쓰던 말 그대로 “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곳”이어서? 장차 어른들처럼 ‘멋지게’ 살고 싶어서? 아니면, 딱히 다른 할 일이 없어서? 다들 가니까? 일단 시키는 대로 하려고? 어른들 성화에 비위를 맞추려고? 어쩔 수 없어서? 죽지 못해? …

 

그 대답은 우리의 예상과 얼마나 같거나 다를까? 전혀 혹은 너무나 달라서 아주 실망스럽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하라는 공부나 해!” “학생이란 모름지기 공부에 매진하는 게 기본!”이라고 다그치고 꾸짖고 타이르면 될까? 그따위 꾸중, 부탁쯤은 우습다고 외면해버리면? “어린것들이 감히!” “다 너희들을 위한 거야!” 그러면 그만일까?

 

우리들 기성세대로서는 이런 ‘한가한’ 질문과 ‘엉뚱한’ 대답 같은 것에 관한 화제는 애초에 꺼내지도 말고 오늘도 내일도 어제처럼 그냥 그대로 지내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저 아이들에게는 정말로 심각한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재미는 너무나 없다. 다른 나라 아이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하면 되는 공부를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해야 한다. 놀 시간은 거의 없다. 심지어 유치원생들도 “놀이처럼” 영어를 배운다. 놀이대신 영어를 배운다. 그냥 놀면 될 나이에 놀이대신 영어를 배워서 자칫하면 놀이조차 싫어하거나 일찌감치 놀 줄도 모를 가능성을 갖게 된다. 놀이가 영어일 수밖에 없다면 그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초등학생이 토익 900점, 부러워만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부추기는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 있다. “우리는 언제 놀아야 하지요?” 물을 수도 없다면, 공부가 지긋지긋하고 하루하루가 지겨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질병이 아닌 자살이고,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비중을 보면, 일본 44.7%, 미국 54.2%, 중국 59.2%인데 비해 우리는 무려 72.6%나 된다(2011,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사실은 27.4%는 그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다.

 

우선 학교 풍토부터 바꿔야 한다. 성적이 꼴찌인 아이에게도 학교에 가는 명분을 주어야 한다. 주눅 들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 아이도 학교에 가고 싶어 해야 마땅하고, 그 아이도 학교생활이 ‘괜찮은 것’이라고 여길 만한 근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가령, 반장선거에서 낙선한 아이에게는 그 이유를 알게 해주고, 낙선도 좋은 공부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낙선 소감을 발표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학교다.

 

바꿀 것은 얼마든지 있다. 교장이 아침부터 전교생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거나 책을 읽히고 싶다면, 아침부터 춤을 추고 싶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아이에겐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교장이니까”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 “학생이니까”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의무도 다해야 한다. 또, 보수니 진보니 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자동차에 주유하듯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고 싶다면, 그만큼 저 아이들이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아이들은 그들의 세계를 그들의 관점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부터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어리석은 기성세대로 낙인찍히는 일만 남는다. ‘자유학기제’를 두자니까 온갖 이유를 들어 막으려 하는 학자가 있고, ‘선행학습’을 금지하자니까 수능 직전까지 진도를 나가라는 말이냐며 혀를 차고 조롱하는 언론도 있다. 누구를 위한 수능인가! 그게 무슨 지고지순의 가치를 지녔는가! 수능부터 바꾸면 된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나중에? 행복이 뭔지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 그게 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지금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