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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저 아이들을 사랑하기로 하자(2014.4.28)

by 답설재 2014. 4. 27.

 

 

 

 

 

 

 

 

저 아이들을 사랑하기로 하자

 

 

 

  그해엔 1학년을 담임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란, 무슨 볼일들인지 고물고물 끝없이 기어 다니는 개미들 같고, 뱅글뱅글 맴도는 앙증맞고 야단스런 풍뎅이 같은가 하면, 팔랑거리며 날아다녀봤자 잡히는 순간 가루로 바스러질 나비 같았다.

 

  그런 것들에게 아침자습은 무슨… 교장이 쳐다보거나말거나 교감이 잔소리를 하거나말거나 아침부터 함께 놀았고, 엄마들이 와서 투정을 하거나말거나 공부는 하는 둥 마는 둥 수업시간에도 번갈아 무릎에 앉힌 채 세월을 보냈다. 고것들은 받아쓰기를 시켜도 서로서로 보여주며 사이좋게 지내는 걸 과시했고, 글자를 채 익히지 못한 친구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정답을 확인해주는 열성을 보였다. 그 개미·풍뎅이·나비 중에 남루하기 짝이 없는 어느 교회 집사 부부의 아들 녀석도 들어 있었는데, 녀석은 주제에 내 무릎을 전용(專用)으로 쓰고 싶어 했다.

 

  그해 겨울 전근을 가게 되었고, 이듬해 어느 날 그 학교를 찾아갔을 때, 아이들은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었는데, 녀석만은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펑펑 눈물만 쏟았다. 썰물처럼 아이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떠나질 못했고, 마침내 한마디 말도 못한 채 흐느끼다 돌아갔을 때 누가 귀띔해 주었다. “사랑이 그리워서 그래요. 인간취급을 받고 싶은 거죠. 그렇지만 가난하잖아요…” 그 말에도 무너지지 않은 냉혹한 가슴을 마지막 방법으로 치유해주려 했던 것일까, 1995년 4월 어느 날, 녀석은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사고로 일찌감치 저승으로 떠났다. 그것도 하필이면 “즐거운” 소풍날 함께 등교할 친구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그건 한번 살아봤다고 할 만한 목숨도 아니었다.

 

  다른 건 알 수가 없다. 다만 이걸 아이들을 위한 세상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교육이 그렇다. 아이들을 사랑해주는, 아이들의 마음에 드는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사랑부터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 가슴에서 그 사랑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 가슴들이 다른 무엇으로 채워져 있다는 걸 아이들은 다 안다. 우리의 눈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무표정한 것, 너무나 분주해서 흔히 아이들은 안중에 없고 가능한 한 그들을 외면하며 지낸다는 걸 다 알아챈다. 필요할 때만 “우리는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외쳐봤자 그게 진정이 아닌 걸 다 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선생님!” 하고 부르며 달려들고 싶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지 말라고 한다. 가령 ‘고·미·안 운동’을 펼쳐서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십니까?”로 획일화하라고 한다. 아침이나 점심때라도 이것저것 각자 다른 걸 하고 싶은데도 모두 같은 책을 읽게 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게 한다. 스마트폰에도 생생하고 재미있는 것이 많은데도 잔소리 말고 교과서를 봐야 한다고 우기고, 그걸 외우라고 강조하고, 학교수업이나 방송, 학원수강에 별 차이가 없는데도 어른들은 그걸 다 시켜야 직성이 풀린다.

 

  세월호… 가슴이 무너진다. 놀람과 두려움, 안타까움, 분노와 원망, 슬픔이 인다. 이리하여 우리는 또 살아가는가… 온전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나 있을까… 그 놀람과 두려움, 분노와 원망, 슬픔은, ‘사랑의 결핍’을 뜻하는 다른 이름이다. 인간의 존엄성마저 소홀해졌다는 삭막함의 표현이다. 아이들은 그걸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 보기가 민망하고 두렵다.

 

  그렇지만 사랑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 아들딸, 손자손녀에 대한 끔찍한 사랑은 이 세상 누구보다 우리가 더 강하다. 세상을 그 사랑으로 바라보면 될 것이다. 이웃 아이들, 이웃 사람들을 그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들도 내 자녀와 우리를 그런 눈으로 봐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방법밖에 없다. 교육은 당연히 그 사랑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사랑밖에 없다는 걸 아이들은 잘 안다. 그 참사의 순간, 우리에게 그걸 잘 보여준 학생이 있다.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어머니는 상황을 모르고도 답할 수 있었다. 사랑에 관해서이기 때문이다. “나도 아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