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물었다. “학생들이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며 행진을 하던데, 뭘 한 겁니까?” 교사가 대답한다. “아, 그거요? 중요한 교훈을 입증하기 위한 훈련이었습니다. 획일성이 얼마나 위험한 고질병인지 깨우쳐 주려고…”
“우리 학교에는 이미 잘 짜인 교육과정이 있잖습니까? 큰 성과로 입증됐지요. 만에 하나 학생들이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걸 막는 게 교사의 도리가 아닌가요?” 다시 대답한다. “저는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그게 올바른 교육입니다.”
교장이 반박한다. “이 학생들에게? 불가능합니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건 전통과 규율입니다! 학생들을 대학에 입학시킬 궁리나 하시오! 다른 일은 저절로 해결될 테니까…”
영화의 한 장면이다. 우리에겐 실화보다 더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6·4 지방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어떤 교육감들이 선출되어 어떤 교육이 전개될지 짐작하기가 어려워서 ‘논쟁다운 논쟁’ ‘교육다운 교육’이 이루어질 날을 생각하며 처연하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저 장면을 떠올려본 것이다. 우리가 이번 교육감 선거에 관심을 가져야 했던 것은 우리 교육이 이상적이기는커녕 우선 정상적이지 않고, 지난 선거 때 기대했던 변화조차 크게 미흡했으므로 이번에는 우리 교육이 획기적으로 정상화되기를 기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요 공약들이 대체로 그게 그거 같거나 “이게 무슨…” 싶은 경우가 흔한데다가 정작 본론은 나오지도 않았거나 피해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가령 선행학습 폐지 혹은 금지는 ‘뜨거운 감자’다. 그것도 이렇게 일그러진 교육, 비정상이 정상의 자리를 차지해버린 학교교육을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처방이다. 어떻게든 당장 먹지 않으면 안 될 ‘뜨거운 감자’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에서는 이 과제에 대한 결의가 드러났어야 한다.
“공약이 아니어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변명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수능 직전까지 진도나 나가라는 말이냐?” “일반고만 족쇄!” “국·영·수 수능대비 언제 하나?” “미리 가르치고 3학년 땐 EBS 문제풀이에 집중하고 있는 현장을 너무도 모르는 정책!” “선행학습금지법은 反교육 포퓰리즘!” 등 그동안의 반론·반박에 대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왜 가만히 있는가. 서글프게도 ‘분묘도굴·음란물 전과자가 도지사·교육감 후보’ ‘예산 줄줄 새는 혁신학교 존폐 대립’ ‘비방·무고 교육감 선거 검찰 고발 벌써 15건’ ‘현 교육감 비리로 청렴이 최대 쟁점’… 등 실망스런 기사는 자주 보였다. 유권자들이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할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이 나라 학생들은 지금 무한경쟁에 시들어가고 있다. 라가르드 IMF 총재가 한국과 핀란드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성적이 늘 1·2위인 것을 칭찬했을 때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한국 학생들은 8시부터 11시까지 공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겨우 3시간 공부로?” 라가르드가 반문하자 오전 11시가 아니라 오후 11시까지 하루 14시간을 공부한다고 털어놓았는데, 이 일화를 소개한 기사 제목은 엉뚱하게도 ‘놀라운 한국의 교육열’이었다. 고교생 수면시간이 하루 6시간도 안 되는 이 현실을 우리는 ‘교육열’로 착각하고 있다.
‘시간엄수, 복종, 기계적인 반복’을 특징으로 하는 산업화시대의 공장모형 교육에 대해 A. 토플러는 1980년에 이미 시효 만료를 선언했지만 우리는 그 경고와 무관한 체했다. 남들은 수학·과학에서조차 개성과 창의력을 기본으로 하는 교육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데도 우리만 시간을 재며 정답이나 재촉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거듭하면서 노벨상이나 기대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는 교사를 추방해버린 영화 속의 저 교장은, 그 교사 대신 교실에 들어가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묻는다. 학생들의 마음은 이미 그 교장을 떠난 후였다. 이 나라 교육감들은 영화 속에 들어가서 추방된 그 교사를 불러와야 한다. 진도나 나가는 교육을 망설임 없이 팽개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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