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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견뎌내는 게 교육의 기본인가? (2014.9.29)

by 답설재 2014. 9. 29.

 

 

 

 

 

 

 

 

 

견뎌내는 게 교육의 기본인가?

 

 

  교육문제의 유형은 이해 당사자들의 견해에 따라 분석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우선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부터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과잉학습장애’로 인한 탈모·불안·대인기피증에는 휴식이 필수적이지만 그따위 교육적 견해 같은 건 팽개치고 막무가내로 ‘뺑뺑이’를 돌리는 부모도 있다.

 

  교사를 상대로 욕설·폭행·성희롱을 하는 ‘중2병’에도 적절한 교육이 필요할 뿐 다툼이 될 견해는 없을 것 같고, “너희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는 유서를 남긴 여고생의 사연도 견해 따위는 거의 필요가 없을 사례다.

 

  이번에는 서로의 견해가 극명하게 다른 경우들이다. 지난 6·4 지방선거로 출범한 민선 2기 교육감 체제에 따라 우리 교육계가 겪고 있는 갈등·혼란이 대표적이다. 9시 등교에 대해 교육감은 “내가 만난 모든 학생들이 원했는데 어떻게 일방적이냐?”고 하는데 “맞벌이 부부 시계는 8시인데 교육청 시계는 9시”라며 어깃장을 놓고, “학원 새벽반도 금지하겠다”고 하자 “노는 道 만들려느냐?”며 반발했다.

 

  중간·기말고사 같은 정기 일제고사를 없애거나 줄이겠다는 건 결코 평가 자체를 없애겠다는 게 아닌 걸 알면서도 “직무유기!”라고 반박하고 ‘학력저하’를 우려한다.

 

  서울의 8개 자율형 사립고 지정 취소 문제는 보다 긴박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다. 자사고 교장들은 법적 대응을 예고했고, 교육감은 “일반고에 자사고만큼의 교과 편성 자율성을 주어 수월성 교육과 평등 교육의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했다. 자사고 평가지표 공정성 논란도 일었고, “자사고 죽이기” “분란 자청” 등의 비판에 이어 교육감 퇴진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취소를 강행하겠다는 교육청과 학교·교육부 간의 법정 다툼이 예측되는 등 더 지켜봐야 할 일이 되었다.

 

  이처럼 견해가 대립되는 일들을 놓고 토론다운 토론을 벌인다면, 우리 교육에 대한 자성(自省)과 함께 새로운 발전의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새벽반 금지” “과연 무엇이 학력인가?”도 좋은 주제다. “좋은 대학 많이 보내려고 열심히 공부시키면 나쁜 학교인가?” 어느 자사고 교장의 이 관점은 더 절실한 주제다. 이런 학교는 정말 나쁜 학교일까, 좋은 학교일까? 토론을 하기 전에는 당연히 그 견해가 대립될 것이고 상대방의 견해에 대해 서로 기가 막힌다고 할 것이 분명하다.

 

  이 문제를 가지고 실제로 토론을 하겠다면, 우선 “매미의 일생에서 교훈을 얻자”는 관점부터 점검하자는 주장을 하고 싶다. 매미는 5년, 혹은 7년, 13년, 심지어 17년간 유충(굼벵이)으로 땅속에서 ‘고생’한 뒤 우화(羽化)하여 고작 한 달 미만 성충의 ‘영예’를 누리고 그 삶을 끝낸다.

 

  흔히 이 ‘기막힌’ 일생에 대해 “참고 견뎌내는 그 삶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지만, 굼벵이가 정말로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는 것인지, 혹 그것들이 “우리는 사실은 지금도 행복하다!”고 밝힌다면 우리는 그 견해에 “어처구니가 없다”고 할 수 있을지, 그것들이 우리를 보고 되레 “어처구니가 없는 인간들”이라고 하지 않을지 묻고 싶은 것이다.

 

  매미의 유충은 그 긴 세월, 땅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해를 한 것이 된다. 학교에서는 참고 견뎌야 한다는 생각도 오해일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교육을 하는 나라들의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행복하다. 비록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성적은 우리가 수위지만 그런 나라 학생들은 공부가 재미있다고들 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주 싫다!”고 대답한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면 나중에 우리는 무슨 수로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지, 그런 관점에서 “좋은 대학 많이 보내려고 열심히 공부시키면 좋은 학교인가, 나쁜 학교인가?”에 대답해 보자고 하고 싶다.

 

  이렇게 토론해도 좋겠다. “당신은 참고 견뎌내서 드디어 매미가 되는 ‘희망 매미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싶은가, 아니면 굼벵이일 때도 행복한 ‘굼벵이 행복학교’에 보내고 싶은가?” “당신이 교사라면 어느 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가?”

 

 

 

 

 

 

 

 

조선일보, 2014.9.3.A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