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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교과서에 대한 고질적 미신 (2014.10.27)

by 답설재 2014. 10. 28.

 

 

 

 

 

 

 

 

 

교과서에 대한 고질적 미신

 

 

  흔히들 교과서에 대한 미신을 갖고 있다. 여간해서는 척결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하는 특별한 것으로는, 교과서를 바이블(聖典),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는 미신이다.

  또 교사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책, 집과 학교를 오가며 늘 지참해야 하는 책, 서점에서는 팔지 않을 책, 국정교과서가 더 미덥고 그다음이 검인정인 책, 국어 교과서 이름은 당연히 ‘국어’, 수학 교과서는 ‘수학’, 과학 교과서는 ‘과학’인 책……

 

  그 중에서도 쉽사리 깨지지 않을 미신은 뭐니 뭐니 해도 교과서 존중의식이다. “교과서와 같은 사람”이라는 말은 그 증거가 된다. 지나치게 정석적이어서 ‘답답한 사람’을 비유할 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달인(達人)” “절대적” “최상” 쯤의 뜻으로 쓴다. “교과서 속의 인물” “교과서에도 나오는 작품” “야구의 신, 타격의 교과서”……

 

  이런 미신도 있다. 교과서는 교육부가 만들고 관리해야 하는 책! 이 미신이야말로 우리의 복잡하고 뿌리 깊은 교육 풍토에서 연유하여 교육부는 아마도 이 미신의 그물에서 좀처럼 헤어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수천 종에 이르는 국정, 검·인정 교과서 중 글자 몇 개, 단순한 사실 혹은 정보의 오류 몇 가지가 보이면 당장 “엉터리 교과서” “오류투성이”라며 교육부를 질타한다. 심지어 “정부에서 하는 일이 겨우 이 수준!”이라고 깔아뭉갠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몇 권만 직접 지휘하여 만들고, 대부분 민간이 만들어 심사 받는 검인정이라고 설명해봤자 들으려 하지도 않고 “그러기에 왜 제도를 그따위로 바꿨느냐!”고 원망한다.

  그런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국정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거의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젠 검·인정을 쓰는 나라조차 크게 줄었고 교육경쟁력을 자랑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교재에 대해서는 정부는 아예 관여하지도 않고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설명도 들은 체 만 체 한다. 어떻게 교육의 핵심요소인 교과서를 그렇게 방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육의 수준은 교과서에 대한 이러한 의식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난해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문항에 오류가 있다며 소송을 낸 수험생들의 등급을 취소해야 한다는 항소심 판결의 배경이 그것이다.

 

  그 소송이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질 것인지, 해당 학생들에 대한 조치는 어떻게 될 것인지는 다음 문제이고, 이 논의의 초점은 정답 처리에 대한 판단 근거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의 평균 총생산액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많다는 내용이 세계지리 교과서와 EBS 교재에 나타나 있기 때문에 문제 오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고, 이의를 제기한 학생들은 2012년의 총생산액은 NAFTA가 EU보다 많다는 ‘사실(事實)’로써 답을 구한 것이다.

 

  명백한 사실에 따라 답하려고 한 수험생들은 문제 자체의 오류 때문에 답지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평가원은 이 학생들의 이의신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와 EBS 교재를 믿고 따른 학생들의 선택을 중시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일관한 것이다.

 

  학교교육은 교과서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과서보다 상위개념인 ‘학교교육과정’이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이 개별성, 지역성, 자율성, 다양성 등을 반영하는 복잡하고 어렵고 역동적인 프로그램도 없이 그저 교과서 내용이나 잘 설명하고 그것을 암기시키는 정도로써 충분하다면 굳이 특별한 자격증을 가진 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어렵고, 학교교육이 방송이나 사교육보다 더 우선적이어야 할 것도 없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교과서대로!”라고 판단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의심스럽다. 또, 그게 사실이라면 교육적으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과서는 단지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자료에 지나지 않으며, 교육선진국들은 대부분 이 논리를 기본적인 철학으로 삼고 있다.

  평가원에서도 교육과정의 의미와 그 타당성, 정당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