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109
기본까지 무너뜨리는 수능
교과서도 사실은 별것 아니라고 하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거나 당장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다. 학교교육이 대학입시에 종속되지 않고 교육과정에 따라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선진국에서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 나라들은 ‘교육과정 기준’을 잘 만들고 교과서를 그 기준 운영·관리의 자료·도구로 삼는다. 우리처럼 교육내용 하나하나를 두고 일일이 간섭하거나 왈가왈부하기보다는 교육목표 달성을 철저히 관리한다. 교과서는 당연히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제작·선정·활용한다. 그게 의무이자 권리이다. '바이블(성전)'의 의미를 가진 ‘교과서’라는 이름을 아예 없애버린 나라도 있다.
우리도 이론상으로는 다 알고 있다. 여러 학자들이 이미 1970년대부터 수십 년째 그렇게 주장해왔다. 학교교육은 교육과정을 관리하는 체제로 운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업자료, 학습도구에 지나지 않는 교과서를 성전(聖典)으로 여기고 있어 교사들은 그 내용을 전달하는 단편적 지식 주입에 치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실상이 드러난 사례가 대학수학능력고사 문항출제 오류 사태다. 지난해의 세계지리 문항 관련 소송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유럽연합(EU)의 총생산액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많다는 내용이 교과서와 EBS 수능방송교재에도 나와 있다고 지적했지만, 수험생들은 2012년의 경우 NAFTA가 EU보다 많았다는 '사실(事實)'로써 승소(勝訴)를 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수능은 드디어 교과서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존재가 되게 하고 있다. "교과서 중심 수능 출제, EBS 방송 연계 수능 운영"이라는 방침은, 교과서 제도의 자율화를 조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종전처럼 성전으로 취급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예 EBS 수능방송교재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일부 교과서는 교실에서 사장되다시피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암기 위주의 즉답형 학력고사가 아니라 교과 간 통합형 창의력과 사고력 문제 출제로써 우리 교육에 새 변화를 가져오게 하겠다는 것이 당초의 취지였지만 그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비판과 비난이 다 옳다는 건 아니다. 이른바 "물수능"에 대하여 고작 한 문항이 등급을 결정하고, 당락마저 나누고, 장래까지 좌우하는 잔인한 차이로 작용해서야 되겠느냐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나 평가라는 것이 단순히 성적을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발에 쓰이게 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두 문항, 세 문항이라도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무리 정교하고 엄격한 평가라 하더라도 그것이 학교교육의 본질을 훼손하지는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능 성적은 일차적으로는 대입전형자료로 쓰이겠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초·중등학교의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교실에서 교과서와 수업, 교사의 존재가 사라지게 하고 있다면 그건 교육이 아니다! 사교육이 줄어들고 아예 근절된다 해도 그렇다!
수능방송과 수능문항 출제가 교육을 좌우하는 행태를 막아야 한다. 교사가 학생에게 "먼저 인간이 돼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대학은 그런 교육을 받은 결과를 반영하는 선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의 70%가 EBS 방송청취능력과 연계되는 것이라면, 혹은 그 내용을 암기하는 수준의 것이라면 교육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수능방송에서는 나머지 30%에 대해서도 학교·교사의 지도를 잘 받거나 교과서를 잘 보면 된다고 강의해 주지도 않는다.
교육부에서는 수능개선위원회와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 출제 오류가 없게 하고 난이도를 잘 조절하겠다는 발표에 그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건 "물수능"이란 비난을 모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루지 말고, 수능과 EBS 방송 자체를 점검하고 학교교육의 힘을 회복해주는 행정, 멋지고 시원한 구상을 시도하기 바란다. 학교가 무력감, 상실감에서 헤어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