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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그리운 눈

by 답설재 2013. 1. 6.

올해는 눈이 많이도 내립니다. 눈 온 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불면 죽을까봐 나다니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길이 미끄러운 건 기본이고, 몸이 시원찮은 사람은 영 끝장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그래서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습니다.

 

옛날에 못 살 때는 눈이 오면 들어앉아 있으면 그만이었지만, '잘 사는 나라'가 된 후로는 아무리 눈이 많이 오고 세찬 바람이 불어도 갈 데는 가고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잘 사는 나라'가 된 후로는 눈이 많이 내리면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습니다.

 

 

 

 

휴일에 내리는 눈을 내다보고 있으면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그럴 때는 걸핏하면 예전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시(詩)가 생각납니다.

…… 겨울밤입니다. 시골 초가집에 눈이 내려 소복소복 쌓이고 있습니다. 누가 그 밤을 새워 책을 읽고 있는지, 창호지에 비치는 호롱불빛은 밤 늦도록 꺼지지 않습니다.

 

이번 겨울에도 눈이 올 적마다 그 시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서,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는 그 시 한 편만으로도 나에게는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놈은 이래서 나쁘고, 저놈은 저래서 나쁜 놈'이란 생각만 하다가도, 이제는 그 정경의 이미지밖에 생각나지 않는 그 시와 삽화(揷畵)가 떠오르면 '아,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복잡한 인간이 되었지?' 싶어집니다.

 

다만 그 교과서가 1950년대의 초등학교 때 배운 교과서인지, 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본 교과서인지 그게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눈이 아늑하게만 기억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요즘은 눈을 맞으며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지만, 예전에 시골에서는 비껴 내리는 찬 눈발을 온 얼굴로 맞으며 십 리, 이십 리 길을 걸어다니기가 일쑤였습니다.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면 그 기억도 언제나 새롭습니다.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

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릉지에 취직했던

눈썹만이 역력하던 그 하인 아이

보는 것 같군. 보는 것 같군.

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 강사에도 목이 쉬어

인제는 작파할까 망설이고 있는 날에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徐廷柱詩選』(1974, 민음사 세계시인선 ⑫), 111쪽.

 

 

 

그때 그렇게 싸락눈을 맞으며 걷던 그 길들이 언제나 그렇게 혼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징채 든 아이는 암무당을 따라다니니까 저보다 쉬웠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볼이나 눈썹을 때리던 그 싸락눈이 정겨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저 암무당의 징과 징채를 들고 가던 저 아이, 누릉지나 얻어먹던 저 아이보다 나을 것도 없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는 그게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채로 저 아파트 창문 턱에 내려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그날들의 그 눈발을 고마워하고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해변 마을에 내린 눈
눈 내린 해변
영동사거리에 내리는 눈
사무실 창 너머로 내려다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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