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눈이 많이도 내립니다. 눈 온 뒤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불면 죽을까봐 나다니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길이 미끄러운 건 기본이고, 몸이 시원찮은 사람은 영 끝장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그래서 죽었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습니다.
옛날에 못 살 때는 눈이 오면 들어앉아 있으면 그만이었지만, '잘 사는 나라'가 된 후로는 아무리 눈이 많이 오고 세찬 바람이 불어도 갈 데는 가고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잘 사는 나라'가 된 후로는 눈이 많이 내리면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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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 내리는 눈을 내다보고 있으면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그럴 때는 걸핏하면 예전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의 시(詩)가 생각납니다.
…… 겨울밤입니다. 시골 초가집에 눈이 내려 소복소복 쌓이고 있습니다. 누가 그 밤을 새워 책을 읽고 있는지, 창호지에 비치는 호롱불빛은 밤 늦도록 꺼지지 않습니다.
이번 겨울에도 눈이 올 적마다 그 시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서, '우리나라 국어 교과서는 그 시 한 편만으로도 나에게는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만 있으면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그놈은 이래서 나쁘고, 저놈은 저래서 나쁜 놈'이란 생각만 하다가도, 이제는 그 정경의 이미지밖에 생각나지 않는 그 시와 삽화(揷畵)가 떠오르면 '아,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복잡한 인간이 되었지?' 싶어집니다.
다만 그 교과서가 1950년대의 초등학교 때 배운 교과서인지, 내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본 교과서인지 그게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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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너머로 보이는 눈이 아늑하게만 기억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요즘은 눈을 맞으며 먼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 않지만, 예전에 시골에서는 비껴 내리는 찬 눈발을 온 얼굴로 맞으며 십 리, 이십 리 길을 걸어다니기가 일쑤였습니다. 내리는 눈발을 바라보면 그 기억도 언제나 새롭습니다.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그 암무당 손때 묻은 징채 보는 것 같군.
그 징과 징채 들고 가던 아홉 살 아이……
암무당의 개와 함께 누릉지에 취직했던
눈썹만이 역력하던 그 하인 아이
보는 것 같군. 보는 것 같군.
내가 삼백 원짜리 시간 강사에도 목이 쉬어
인제는 작파할까 망설이고 있는 날에
싸락눈 내리어 눈썹 때리니…….
『徐廷柱詩選』(1974, 민음사 세계시인선 ⑫), 111쪽.
그때 그렇게 싸락눈을 맞으며 걷던 그 길들이 언제나 그렇게 혼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징채 든 아이는 암무당을 따라다니니까 저보다 쉬웠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볼이나 눈썹을 때리던 그 싸락눈이 정겨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저 암무당의 징과 징채를 들고 가던 저 아이, 누릉지나 얻어먹던 저 아이보다 나을 것도 없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는 그게 정겹게 느껴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채로 저 아파트 창문 턱에 내려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그날들의 그 눈발을 고마워하고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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