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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이야기

「세상의 모든 아침」

by 답설재 2012. 9. 26.

 

 

 

 

 

 

 

  여자대학교 교정에 가보셨습니까?

  "수백 수천"일 것 같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놀라운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그 교정 비탈길에 서서, 넋을 잃었습니다.

  어느 한 송이를 가리킬 수가 없는 진홍색 세르비아 꽃밭! 그 빛깔에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나!"

  "저 도도한 물결!"

  그 순간에는 예쁜, 아름다운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슨 행사를 했는지, 강당을 나온 그 학생들이 흩어져 눈앞에서 다 사라지고 없을 때, 저는 제정신을 차리고 가던 길을 갔습니다.

 

 

 

 

  가령 어린이들이 살고 있는 초등학교 교정에 가봐도 좋습니다.

  그 "수백, 수천"의 아이들을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것은 제가 초등학교 교장을 해봐서 "완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 중의 누구라도 우리를 쳐다보게 되면, 눈이 부셔서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고, 그 아이들 앞에서는 거짓말 같은 걸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가 학교에 계시는 선생님들을 믿어도 좋은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아이들 앞에 서면 그 눈빛 때문에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는, 그러니까, 여자대학교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같은 곳에서 딱 한 명 예쁜 사람을 고르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바보처럼 얘기하면 "사람은 다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고, 더 바보처럼 얘기하면 "그런 곳에 가면 우리도 순수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대충 그런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체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詩 「세상의 모든 아침」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김언희 시인은 참 멋진, 아름다운 시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을 찾아가서 도대체 어떤 시인인지 더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사내 하나를 잡아서,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그 사내를 달래며, 귀여워해주며, 여기 이런 누추한 곳 말고 어디 아늑한 곳으로 숨어 들어가는……

 

 

 

 

세상의 모든 아침

 

 

                                                                                                                                     김언희

 

 

  양치질을 하다가, 저기 저, 총총히 골목길 접어드는 사내, 하날 덥석, 문다. 물고서, 한 입 담뿍, 물고서, 짙푸른 고무나무, 짙푸른 그늘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간다.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관록의, 뱃살을 출렁거리며, 고무나무숲 그늘로, 콩알만한 불알을, 슬슬 어르며, 콧잔등을 찡긋거리며, 저 울창한 고무나무, 고무 그늘로, 뜨건 혀를 귓속으로 후훅, 디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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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희 1969년 경남 진주 출생. 1989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트렁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뜻밖의 대답』 『요즘 우울하십니까』.

 

 

『현대문학』 2012년 1월호, 358~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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