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사
고수영
길 가다 만난 친구에게
달리는 버스에게
종종 빨간 발목 비둘기에게
꼬리 살랑살랑 강아지에게
한들한들 꽃에게
먼지투성이 비닐봉지에게
가만 놓아두어도 흔들리는 그네에게
기어가는 개미에게
물을 풍풍 뿜어내는 분수에게
세 살 동생은 모두에게
"안녕, 안녕, 안녕!"
♣
아이는 아직도 친구들에게는 다정한 인사를 하겠지요?
그렇지만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손을 흔들던 시대는 지난 것 아닌가요?
비둘기는 환경문제에 걸려 해조(害鳥)로 낙인 찍히지 않았나요?
그럼, 강아지는 요즘도 아이들의 친구인가요? 지금도 어디엔가 옛날의 그 강아지들이 살고 있나요? 요즘 강아지들은 그 주인들이,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공주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 아닌가요? 그 공주님, 왕자님들이 꼬리 살랑살랑 흔들어서 아이들의 인사를 받아주나요? 거리에 나가보세요. 그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그 강아지들 데리고 다니며 "엄마는 간다~." "얼른 엄마 따라와." 그러는데, 어디 아이들 인사를 받기나 할까요?
한들한들 꽃길은 코스모스길인가요? 어디 가면 그런 길이 있을까요?
먼지투성이 비닐봉지는 흔하겠군요. 그렇습니까? 그럼, 비닐봉지라도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나요?
가만 두어도 흔들리는 그네…… 그건 아파트 마당에 가면 볼 수 있겠군요. 아무도 나오지 않는 날 오후에 혼자서 가만히 흔들리는 그네, 그 쓸쓸한 놀이터, 걸핏하면 텅 비어 있는 그곳을 지켜보며 가만히 흔들리는 마음……
그 놀이터를 기어가고 있을 개미들……
어른들이 무슨 자랑할 일을 벌이는 날에는 꼭 '풍풍' 물을 뿜어내는 분수……
시인의 마음이야, 우린들 왜 모를까요.
사실은 아이들보다 우리가 더 잘 알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어느 전철역에서 이 시를 읽으며 그랬지요. '옛날에는 그랬는데……'
그렇지만 지금은 시인의 노래속에서나 그렇지요. 그게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1……
♣
그 슬픔으로, 우리 아파트 아이들에게 '인사하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운동"이라고 어디 표어를 써붙이거나 포스터를 그려 붙이진 않았습니다. 혼자서 펼치는 운동이니까요. 쓸쓸하지만, 그냥 혼자서 그렇게 정해놓고 펼치는 운동입니다. 혼자 하는 일을 뭐 하려고 써붙이고 하겠습니까.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학교 가는 그 아이들에게, 제가 먼저 "안녕!" "안녕!" 인사하고, "일찍 가네?" "뭘 그렇게 가지고 가?" "좋은 걸 만들었네?" "그거 새 구두지?" "잘 다녀와?" 같은,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한두 마디 붙이며 지내니까, 그 아이들 하고는 금방 친해졌습니다. 그 아이들이 어디 다른 데서 만나도 저를 알아보고 얼른 인사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게 참 기분 좋은 일인데, 혹 주말 아침, 그 중의 어느 아이가 그 아이의 부모님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저를 만나 서로 인사를 하면, 그 아이가 저와 친하게 지내는 걸 본 그 아이의 부모님들은 매우 어색한 표정이 됩니다. 아이를 따라 인사를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뭣하고 해서 못 볼 걸 본 것처럼 외면하기도 합니다. 내 참……. 집에 돌아가거나 제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아이에게 그럴까요? "너 그 머리 허옇게 센 남자에게 인사하고 지내지 마라, 응?" 하고, 단란한 가정을 파괴하려는 몰염치한 사람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제가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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