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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인사」

by 답설재 2012. 9. 20.

 

 

 

 

 

      인 사

 

 

              고수영

 

 

길 가다 만난 친구에게

달리는 버스에게

종종 빨간 발목 비둘기에게

꼬리 살랑살랑 강아지에게

한들한들 꽃에게

먼지투성이 비닐봉지에게

가만 놓아두어도 흔들리는 그네에게

기어가는 개미에게

물을 풍풍 뿜어내는 분수에게

세 살 동생은 모두에게

"안녕, 안녕, 안녕!"

 

 

 

 

 

 

 

  아이는 아직도 친구들에게는 다정한 인사를 하겠지요?

  그렇지만 지나가는 버스를 보고 손을 흔들던 시대는 지난 것 아닌가요?

 

  비둘기는 환경문제에 걸려 해조(害鳥)로 낙인 찍히지 않았나요?

  그럼, 강아지는 요즘도 아이들의 친구인가요? 지금도 어디엔가 옛날의 그 강아지들이 살고 있나요? 요즘 강아지들은 그 주인들이,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공주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 아닌가요? 그 공주님, 왕자님들이 꼬리 살랑살랑 흔들어서 아이들의 인사를 받아주나요? 거리에 나가보세요. 그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그 강아지들 데리고 다니며 "엄마는 간다~." "얼른 엄마 따라와." 그러는데, 어디 아이들 인사를 받기나 할까요?

 

  한들한들 꽃길은 코스모스길인가요? 어디 가면 그런 길이 있을까요?

  먼지투성이 비닐봉지는 흔하겠군요. 그렇습니까? 그럼, 비닐봉지라도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나요?

 

  가만 두어도 흔들리는 그네…… 그건 아파트 마당에 가면 볼 수 있겠군요. 아무도 나오지 않는 날 오후에 혼자서 가만히 흔들리는 그네, 그 쓸쓸한 놀이터, 걸핏하면 텅 비어 있는 그곳을 지켜보며 가만히 흔들리는 마음……

  그 놀이터를 기어가고 있을 개미들……

  어른들이 무슨 자랑할 일을 벌이는 날에는 꼭 '풍풍' 물을 뿜어내는 분수……

 

  시인의 마음이야, 우린들 왜 모를까요.

  사실은 아이들보다 우리가 더 잘 알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어느 전철역에서 이 시를 읽으며 그랬지요. '옛날에는 그랬는데……'

 

  그렇지만 지금은 시인의 노래속에서나 그렇지요. 그게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1……

 

 

 

 

  그 슬픔으로, 우리 아파트 아이들에게 '인사하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운동"이라고 어디 표어를 써붙이거나 포스터를 그려 붙이진 않았습니다. 혼자서 펼치는 운동이니까요. 쓸쓸하지만, 그냥 혼자서 그렇게 정해놓고 펼치는 운동입니다. 혼자 하는 일을 뭐 하려고 써붙이고 하겠습니까.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학교 가는 그 아이들에게, 제가 먼저 "안녕!" "안녕!" 인사하고, "일찍 가네?" "뭘 그렇게 가지고 가?" "좋은 걸 만들었네?" "그거 새 구두지?" "잘 다녀와?" 같은,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한두 마디 붙이며 지내니까, 그 아이들 하고는 금방 친해졌습니다. 그 아이들이 어디 다른 데서 만나도 저를 알아보고 얼른 인사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게 참 기분 좋은 일인데, 혹 주말 아침, 그 중의 어느 아이가 그 아이의 부모님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다가 저를 만나 서로 인사를 하면, 그 아이가 저와 친하게 지내는 걸 본 그 아이의 부모님들은 매우 어색한 표정이 됩니다. 아이를 따라 인사를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뭣하고 해서 못 볼 걸 본 것처럼 외면하기도 합니다. 내 참……. 집에 돌아가거나 제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아이에게 그럴까요? "너 그 머리 허옇게 센 남자에게 인사하고 지내지 마라, 응?" 하고, 단란한 가정을 파괴하려는 몰염치한 사람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제가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1.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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