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신은영
당신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언제, 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나를, 이라고 묻지는 않으시겠지요
당신에게 자유란 무엇입니까
당신이 시를 읽는다면 혹은 쓴다면
당신은 반드시 속았습니다
난 한 번도 시에 진실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진실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 전에 당신께서 진실을 마주할 생각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니면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으신가요
당신을 사랑한 사람은
당신을 위해 생명을 주었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영원히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인정할 것입니까
당신은 당신을 택할 것입니까 그를 택할 것입니까
당신을 위해 죽은 한 사람을 알게 된다면
자신이 왕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한평생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큰 물살을 거슬러 갈 수 있겠습니까
당신도 그를 위해
생명을 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 한 번 눈길이라도 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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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영 1985년 전주 출생. 2008년 『시인세계』 등단.
『현대문학』 2012년 3월호, 178~179쪽.
문학이 좋은 것은, 그것이 철학이나 교육학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소설이나 시를 보고, 그 시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그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보고
그 소설을 쓴, 그 시를 쓴, 소설가, 시인을 붙잡고
"이게 사실입니까? 당신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까?"
"이게 모두 진실입니까?"
혹은
"이게 교육적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시인, 소설가는 얼마나 난처하겠습니까?
시인은, 「만약에」라는 제목을 달기는 했지만,
이보다 더 절절할 수가 없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처음으로 한번 진실해지자고 대어듭니다.
모든 걸 걸고, 모든 걸 주었다고 고백합니다.
영원을 살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포기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결코 왕(王)이 아닌 사람을
왕으로 삼고,
마침내 죽은 목숨이 되어 사랑한다는 이야기.
그러므로 모든 것이 그 사랑으로 인하여 흘러간다는 이야기.
당신이 그 사랑을 알기나 하느냐고 묻는 이야기.
지금 그 사랑의 맹세에 대하여 확인하고 싶은 이야기.
세상의 무엇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이야기.
영원을 약속해주는 종교보다 더 절절한 이야기.
문학이 좋은 것은,
철학이나 교육학보다 더 진실한 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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