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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엉덩이의 가족사」「세상의 친절」

by 답설재 2012. 11. 2.

 

 

 

엉덩이의 가족사

 

 

하종오

 

 

젊은 어머니는 어린 그를

기저귀 채워서 키웠다

기저귀 갈 때마다

그의 엉덩이를 토닥거리던 어머니는

자신의 엉덩이를 닮아 보여 흐뭇했다

 

장년의 그는 노년의 어머니를

기저귀 채워서 보살폈다

기저귀 갈 때마다

어머니의 엉덩이를 외면했던 그는

자신의 엉덩이가 닮아 보여 싫었다

 

그는 기저귀 차지 않고 지냈던

긴 날들 동안에

처자식을 양껏 벌어 먹이느라

엉덩이를 실컷 실룩거리며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늙은 그는

젊은 아비 적에 기저귀 채워 키운 자식이 다 커서

제 새끼에게 기저귀 채우고 찾아오지 않을 무렵엔

늙은 아내를 기저귀 채워서 간병했다

아내의 엉덩이를 볼 적마다 그는

자신의 엉덩이가 미리 보여 고개 저었으나

정작 기저귀 차고 눕게 되었을 무렵엔

누구의 엉덩이도 기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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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오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국경 없는 공장』 『아시아계 한국인들』 『베드타운』 『입국자들』 『제국(諸國) 또는 제국(帝國)』 『남북상징어사전』 등.

 

 

 

『현대문학』 2012년 1월호(382~383쪽)에서 읽었습니다.

섬찟했습니다.

감추고 싶은 것까지, 온갖 것이 적혀 있는 오래 전 수첩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조목조목 다 지적해 놓았으니 감출 수도 없고, 단 한 가지라도 무슨 변명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니 얼른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쓸데없는 잔꾀 부리지 말자.'

'이제 와서 무엇하려고…… 다 맞다고 그렇다고 잘못 했다고 시인해 버리자.'

 

속옷 하나라도 걸쳐야 어디를 감추든지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발가벗겨 놓고 "네 어린 시절은 이랬다", "네가 자라서 네 어머니 아버지를 저승으로 보낼 땐 이렇게 했다", "그렇게 해놓고 네 처자식에게는 이랬다. 적어도 네 자식에게는 이렇게 했다", "그리고 이제 바로 너! 네 앞날은 이렇다"고 확실한 길을 보여주고 있으니…….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 것도 생각납니다.

"전철에서 보면 요즘 노인들은 거의 다 화가 나 있는 것 같아요."

이것 저것 생각하면 화가 날 만도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젊은이들이 그 나이가 되면 그들도 또 화가 날 테니까, 그게 분명하니까 참으라고 하고 싶기도 합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라는 서양의 시인도, 우리의 하종오 시인처럼 우리가 가는 길을 더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온통 딱지와 흠집으로 뒤덮여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날이 되면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하며 떠난답니다.

 

 

 

세상의 친절

 

 

1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에

너희들은 발가벗은 아이로 태어났다.

한 여자가 너희들에게 기저귀를 채워줄 때

너희들은 가진 것 하나도 없이 떨면서 누워 있었다.

 

2

아무도 너희들에게 환호를 보내지 않았고, 너희들을 바라지 않았으며,

너희들을 차에 태워 데리고 가지 않았다.

한 남자가 언젠가 너희들의 손을 잡았을 때

이 세상에서 너희들은 알려져 있지 않았았다.

 

3

차가운 바람 가득한 이 세상을

너희들은 온통 딱지와 흠집으로 뒤덮여서 떠나간다.

두 줌의 흙이 던져질 때는

거의 누구나 이 세상을 사랑했었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  조선일보, 2012.9.22.A30. 「가슴으로 읽는 시」에서 장석남 시인이 소개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