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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승강 「머리를 맡긴다는 것」

by 답설재 2012. 11. 18.

남자들의 미용실 이용이 보편화되었습니다.

 

늘 가던 미용실에 들어갔더니 그 여자가 사라졌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당신을 믿고 온다"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그건 흡사 "내가 당신을 믿고 산다"는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으므로, 말하는 쪽 마음이 "그렇다"는 걸로 비치기 쉬울 만큼 조심스러워서── 믿었던 여인이 말없이 떠나간 것 같은 느낌이 없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섭섭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무언가 억울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겉으로 드러내어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일종의 배신감이라고 할까,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 심정입니다. 마침내 '나 몰래 야반도주했구나!' 싶기조차 한 것입니다.

 

당황해 하며 돌아나왔습니다. 갑자기 서먹서먹해진 그 골목길에서 잠깐 망설이다가 곧 다른 두어 곳 중 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 여자보다 젊고 예쁜 여자에게 머리를 맡기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그 여자만큼 마음에 들도록 될 것 같진 않습니다.

 

 

 

머리를 맡긴다는 것

 

 

김 승 강

 

 

탁도희가 사라졌다

세상에서 내 머리를 가장 내 마음에 들게 깎아주던 여자 탁도희

나와 한 달에 한 번 거울을 통해 눈을 맞추던 여자 탁도희

왜 떠난 것일까 왜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난 것일까

몇 년 동안 머리를 맡겼으니 어떤 형태로든 언질은 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지금쯤 그때 그 말이 그 뜻이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말 정도는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입 냄새가 싫지 않던 여자

지금 생각하면 머리를 깎다가도 한 번씩 전화가 왔고

그때면 내게 양해를 구하고 한쪽 구석으로 가 전화를 받고는 했지

그렇지 않아도 나는 전화를 한 사람이 남자일 것이라는

내 처음 직감을 확신하기 시작하고 있었고

어쩌면 전 남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나에게 그이는 이혼녀였다

아이는 몇이나 뒀는지도 궁금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그리하여 탁도희의 과거는 다음과 같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탁도희 전남편은 술주정뱅이였다

술에 취하면 평소에 선했던 사람이 백팔십도로 변해 손찌검을 했다

탁도희는 결혼을 하면 아이 둘은 낳아야 되는 줄 알았다

아이 둘을 낳았고 두 아이는 잘 성장해주었다

아이들이 다 컸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탁도희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전에 혼자 살 궁리로 미용기술을 몰래 익혀두었다

이혼 후 대학가에 조그만 미용실을 내었다

가끔 전남편이 술에 취해 전화를 하거나 미용실을 찾아와 서성였지만

경쟁이 심해 수입은 많지 않았지만

남편은 그러다 말았고 휴일 없이 일하면 살아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 탁도희가 사라졌다

나는 당황했다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고쳐 썼다

한 번씩 통화를 하던 남자는 전남편이 아니었다

탁도희는 눈에 띄게 예쁘지는 않았지만 이혼녀란 걸 알고 대시하는 남자들이 몇 있었다

몇 년을 버티다 탁도희는 그중 한 남자의 끈질긴 구애에 넘어갔고 그 남자와 야반도주하듯 사라졌다

 

머리 깎으러 나왔다가 나는 낯익은 골목길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맨다

이 골목에는 미용실이 세 곳이나 있지만

탁도희만 한 여자를 어디서 다시 찾는단 말인가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미용실 문을 밀치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거기 박하향의 입 냄새를 가졌을 것 같은 젊고 예쁜 여자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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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강 1959년 경남 마산 출생. 2003년 『문학판』 등단. 시집 『흑백다방』『기타 치는 노인처럼』. 

 

 

 

 

 

 

 

『현대문학』 2012년 6월호(141~143쪽)에 실렸습니다.

 

1959년에 태어난 시인이, 2003년에 등단할 때까지 뭘 했을까 생각했습니다. 시인들의 약력을 들여다보면 그 시인의 시만큼 흥미롭고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흑백다방' '기타 치는 노인처럼' ……

 

시인처럼 한 여인의 일생에 대한 소설을 써보고, 탁도희!… 시인처럼 멋진 작명(作名)을 해서 아예 그렇게 불러보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 머리를 깎으러 가거나 구두를 닦으러 가거나

커피를 사 마시러 가거나

감기약 처방을 받으러 가거나 식품을 사러 가는 아내를 따라 슈퍼에 가거나

소소한 일상들이 더 재미있어질 것 같습니다.

진작 그렇게 할 걸 싶기도 합니다.

 

이참에 그동안 찾아가던 그 이발소를 버리고 ──더구나 미용실에 비해 퀴퀴한 냄새도 심한 것을 분명한 핑계로 삼아서── 어디 참한 미용실을 찾아나서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저런 시 한 편 쓸 수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