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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정호승 「폭설」

by 답설재 2012. 12. 5.

 

2011년 2월 둘째 주 어느 날, 블로그 『강변 이야기』에서

 

 

 

 

 

폭 설

 

 

정호승

 

 

폭설이 내린 날

칼 한 자루를 들고

화엄사 대웅전으로 들어가

나를 찾는다

어릴 때 내가 만든 눈사람처럼

부처님이 졸다가 빙긋이 웃으신다

나는 결국 칼을 내려놓고 운다

칼이 썩을 때까지

칼의 뿌리까지 썩을 때까지

썩은 칼의 뿌리에

흰 눈이 덮일 때까지

엎드려 운다

 

 

 

출처 : 정호승, 『밥값』(창비, 2010), p.88(『현대문학』 2012년 4월호, 「텍스트에 포개 놓은 사진」에서)

 

 

 

 

 

그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얼마나 후련하겠습니까. 그 아름다운 분도 기특해하시고말고겠지요……

 

울다가 가렴.

울지 않고 어떻게 갈 수 있겠니.

그래봤자

그 칼의 뿌리가 썩어 가서, 썩은 그 곳에

오늘 같은 폭설이 덮일 때까지인데, 잠깐일 텐데

그렇게 좀 울면서 너를 찾으렴.

 

그러셨을까요?

 

해마다의 이런 폭설을 겪으면서 어느 때 한 번 그렇게 해서 '인간'이 될 수 있었다면 나도 이렇진 않았을 것입니다.

 

시인의 그 『밥값』이란 시집, 「밥값」이란 시가 궁금했습니다.

 

 

 

 

 

밥 값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어디서 이 사나이를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그 어머니는 또 어떤 분이신지,  이 사나이는 지금도 그렇게 늠름하면서도 그 어머니에게 그렇게 송구스러워하고 있는지,  밥값을 위해 살아가는 일들이 신산(辛酸)해야만 하는 이유를 알아냈는지,  우리는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그를 만나면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