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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오탁번 「라라에 관하여」

by 답설재 2013. 1. 10.

라라에 관하여

 

 

原州高校 이학년 겨울, 라라를 처음 만났다. 눈 덮인 稚岳山을 한참 바라다보았다.

 

7년이 지난 2월달 아침, 나의 天井에서 겨울바람이 달려가고 대한극장 이층 나列 14에서 라라를 다시 만났다.

 

다음 날, 서울역에 나가 나의 내부를 달려가는 겨울바람을 전송하고 돌아와 高麗歌謠語釋硏究를 읽었다.

 

형언할 수 없는 꿈을 꾸게 만드는 바람소리에서 깨어난 아침, 次女를 낳았다는 누님의 해산 소식을 들었다.

 

라라, 그 보잘것없는 계집이 돌리는 겨울 풍차소리에 나의 아침은 무너져 내렸다. 라라여, 본능의 바람이여, 아름다움이여.

 

 

- 『현대문학』 2012년 2월호(212~213) 김행숙 시인의 「누군가의 시 한 편」

- 출전 : 오탁번 『아침의 豫言』(조광출판사, 1973).

 

 

 

오탁번 시인은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물을 까닭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혹 "왜 시인이 되지 않았는가?" 묻는다면 "쓰고 싶은 시는 죄다 오탁번 시인이 썼다. 그는 지금도 내가 쓰고 싶은 시들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라라에 관하여」도 그런 시 중 한 편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만났던 그 소녀를 서울에서 다시 만나 영화 한 편 함께 보고, 이튿날 서울역에서 전송했다는데…… 사람들은 너나없이 실없는 만남에 마음이 흔들린 얘기를 하고 듣습니다.

 

그래봤자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니고, 저 시인은 겨울 찬바람 속에 돌아가 高麗歌謠語釋硏究를 읽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고, 누님은 또 아이 하나를 낳는 일이 펼쳐질 뿐입니다. 라라, 기억 속에 있어야 할 그 여인은 편리할 때마다 나타나 마음을 흔듭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 중에도 라라가 있으면, 그녀가 라라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기억 속으로 사라져간 사람 말고 오늘 내게 오고 있는 이승의 아름다운 라라…………

 

                                                                                                                                                      사천에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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