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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신용묵 「소사 가는 길, 잠시」

by 답설재 2013. 1. 22.

소사 가는 길, 잠시

 

 

 

시흥에서 소사 가는 길, 잠시

신호에 걸려 버스가 멈췄을 때

 

건너 다방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 속에서 손톱을 다듬는, 앳된 여자

머리 위엔 기원이 있고 그 위엔

 

한 줄 비행기 지나간 흔적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오후,

차창에도 다방 풍경이 비쳤을 터이니

 

나도 그녀의 얼굴 속에 앉아

마른 표정을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과 나는, 겹쳐져 있었다

 

머리 위로 바둑돌이 놓여지고 그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 신용묵(1974~  )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이 조선일보(「가슴으로 읽는 시」, 2013.1.21, A.34)에 소개했습니다.

 

 

 

 

  소사는, 방배동에서 셋집을 살다가 이사 가며 한 2년만 살아야지 했는데, 11년을 살았습니다.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살아보면 아무 곳이나 다 괜찮습니다.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보면, 저런 곳에 집을 짓고 지내면 좋겠다 싶은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어느 곳이나 다 좋고 괜찮은 것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고 시간이, 세월이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입니다. 이제 또 세월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갈는지 두고 봐야 알 것입니다.

 

 

 

 

  소사는, 아이들 셋이 다 우리(아내와 나)와 함께 지낸 곳입니다.

  그곳은 또 내가 분주하게, 지금까지의 생애에서는 비교적 더 열정적으로 생활한 곳이기도 합니다. 한 생애라고 해도 좋다면, 그곳은 어쩌면 고마운 곳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될 줄을 모르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무턱대고 "가만 있어 보라"고만했습니다. 나중에 무얼 좀 어떻게 해줄 것처럼, 심지어 그런 얘기 듣지 않아도 숨이 차서, 이야기를 다 들어보지도 않고, 그냥 기다려보라고만 한 것인데………… 누추하고 구차하게 지내는 것을 미안하게 여기지도 않고 살았는데…………

 

  그 아이들은 다 내 곁을 떠나버렸고, 아내는 이제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내가 필요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고 나 없이 사는 것이 오히려 홀가분한 자리로 떠난 것입니다.

 

  하기야, 그때 그렇게 살면서, '이곳을 복사골이라고 하는데, 왜 복사꽃이 잘 보이지 않지?' 생각만 했지, 그 복사꽃을 찾아나설 생각도 하지 못했으니 사는 게 참 어려웠고, 나는 꼭 지내놓고는 그 어려웠던 때를 그리워하는 어처구니없는 사람입니다.

 

 

 

 

  신용묵 시인의 저 「소사 가는 길, 잠시」

  장석남 시인이 소개한 아름다운 시, 이 시 속에 마치 그 시절 내가 들어 있기라도 한 양 그날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종착역까지 몇 시간을 가며 자꾸자꾸 읽어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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