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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김성규 「우는 심장」

by 답설재 2013. 1. 3.

우는 심장

 

 

김성규

 

 

나를 죽이고 김이 나는 심장을 꺼내 가

라고 말하면 네 심장이 우는 소리

너를 저주할 거야 어떻게 살아가든

그날 나는 죽어서 사라졌어야 했는데

이제는 지쳐 죽지 못하고

술집을 전전하며 노래하네 우는 심장을 들고

노래하는 심장을 사세요!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 탁자 밑에 손을 숨기고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지

너는 나에게 묻지

미안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나는 할 수 없이 살아졌던 것이라고

심장 속에서 몸을 말고 잠을 자다

누군가에게 심장을 팔러 걸어갔지

냄비에 넣어 오래 요리하면

핏물을 뱉어내며 웃는 심장

심장은 나에게 묻지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지

나는 할 수 없이 사라졌던 것이라고

술잔을 비울 때마다

심장이 우는 소리로 나에게 노래했지

나를 저주할 거야 어떻게 살아가든

형편없는 가격으로 심장을 팔아버리고

술집 구석에 앉아 노래하는 심장을 떠올리네

심장이 우는 소리로 나에게 노래했지

나를 죽이고 김이 나는 심장을 꺼내 가

나를 죽이고 김이 나는 심장을 꺼내 가

취해, 자면서도 우는 소리가 들리네

 

 

 

──────────────────

김성규 1977년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동아일보』 등단. 시집 『너는 잘못 날아왔다』.

 

 

 

 

『현대문학』 2012년 3월호, 170~171쪽.

 

 

"나를 죽이고 김이 나는 심장을 꺼내 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나는 그렇게 살았는가. 그렇게 치열하게 살았는가.

그럴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었는가. 들으며 살았는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인간인가. 어떻게 되어먹은 인간인가.

 

"너를 저주할 거야 어떻게 살아가든"

"노래하는 심장을 사세요!"

 

내가 듣지 않은 말, 그 말을 듣지 않은 나를 비웃고 돌아서서 심장을 팔러다니는 사람을 떠올려본다.

건성으로, 떠밀려 살아온 나와 달리, 그는 진실로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심장 속에서 몸을 말고 잠을 자다 / 누군가에게 심장을 팔러 걸어갔지 / 냄비에 넣어 오래 요리하면 / 핏물을 뱉어내며 웃는 심장 / 심장은 나에게 묻지 / 왜 아직 살아 있는 거지?"

 

그 사람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그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있다 해도 그걸 확인할 자신이 없다.

무섭다. 할 수 없이 사라져서 할 수 없이 살아졌던 인생, 흘려보낸 '인생'이 너무 가벼워서 미안하다.

도저히 어쩔 수 없게 된 길……

다시 가겠다고 할 수 없는 길……

 

"나를 죽이고 김이 나는 심장을 꺼내 가."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하여, 그런 얘기를 진정성을 가지고 듣지 못한 자신에 대하여 생각한다.

끔찍하다, 인생!

그게 인생인 줄을 모르고, 그냥 마셔댄 술처럼…………

나는 그저 할 수 없이 주어졌으니까 '살아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