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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전윤호 「모래성」

by 답설재 2013. 2. 17.

모래성

 

 

                                                      전윤호

 

 

해질녘이면 돌아가야지

엄마가 부르기 전에

신발도 탁탁 털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야지

종일 만든 모래성도 사라지겠지

공들였던 몇 개의 탑과

조개껍질로 만든 방도 무너지겠지

집을 팔아야겠어요

대출이자를 견딜 수 없어요

남는 돈으론 전세도 얻을 수 없네요

아내의 등 뒤로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겠지

그게 뭐 좋다고 진종일 있었니

그래도 재밌었어요

찌개를 끓이는 연탄불 아래서

모래투성이 손을 씻는다

곧 곯아떨어질 시간

해질녘이면 돌아가야지

 

 

 

───────────────────

전윤호 1964년 강원도 정선 출생. 1991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 『연애소설』 등.

 

 

                                                                    『현대문학』 2012년 3월호.

 

 

 

 

  이 아름다운 시에 생각을 덧붙이는 게 미안합니다. 시인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밥이라도 한번 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가는 길이 이렇다면, 뭐가 두렵겠습니까, 혹은 무슨 아쉬움이 남고, 섭섭하고, 그렇겠습니까.

  나도 가서,

  '엄마'를 만날 것입니다.

  어릴 적 그 개울가에서 모래성을 쌓다가 온 것처럼,

  내일 또 나가서 얼마든지 놀다가 올 수 있는 것처럼, 홀가분하게 돌아온 것처럼,

  가서,

  '엄마'에게 다 얘기할 것입니다.

  서러워 울지도 않고, 그냥 그 예전의 어릴 적에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다 얘기할 것입니다.

 

  '엄마'는 오래 살지 못하고, 겨우 마흔여덟에 떠났으니까 듣고 싶은 얘기도 많을 것이고, 나도 털어놓고 할 얘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늘 이렇게 중얼거리며 지냅니다.

  "엄마, 내가 그때 그 세상에 가거든 봐. 꼭 밝히고 싶은 것들이 있어."

  가령 이런 이야기입니다.

  "엄마 때문에, 엄마가 너무 일찍 이곳으로 와서 나는 정말 죽을 만큼, 아니 때로는 '나는 언제 죽나……' 하기도 했어. 미안하지만 자주는 아니더라도 딱 몇 번만 엄마 원망도 했어."

 

  그렇지만, 그날 '엄마'를 만나면, 지금 벼르고 있는 일들이 다 시시하게 여겨질 지도 모릅니다.

  '엄마'도 웃으며 이런 말만 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 나처럼, 나를 닮아서 심장병이 걸렸는데도, 여러 번 고쳐 가며 오래오래 살 만큼, 그 머리가 하얗도록 그 세상이 좋았니?"

  그러면서 또 묻겠지요.

  "그래, 그애는 잘 있니?"

  그 세상으로 가며 내 아내 걱정을 많이 했으니까요

  "저 애에게 모든 걸 다 맡기고 가야 하다니……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이 가르쳐 준 대답입니다.

  "그래도 재밌었어요."

  우리가 그렇게 하고 나면, 내가 '엄마'와 그렇게 만나고 나면,

  이승의 나의 것들은,  모래성처럼 다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애 써서 쌓아 놓은 내 모래성……

 

 

 

 

 

알렉스 김, 『아이처럼 행복하라』(공감의기쁨, 2012),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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