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전윤호
해질녘이면 돌아가야지
엄마가 부르기 전에
신발도 탁탁 털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야지
종일 만든 모래성도 사라지겠지
공들였던 몇 개의 탑과
조개껍질로 만든 방도 무너지겠지
집을 팔아야겠어요
대출이자를 견딜 수 없어요
남는 돈으론 전세도 얻을 수 없네요
아내의 등 뒤로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겠지
그게 뭐 좋다고 진종일 있었니
그래도 재밌었어요
찌개를 끓이는 연탄불 아래서
모래투성이 손을 씻는다
곧 곯아떨어질 시간
해질녘이면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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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호 1964년 강원도 정선 출생. 1991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순수의 시대』 『연애소설』 등.
『현대문학』 2012년 3월호.
이 아름다운 시에 생각을 덧붙이는 게 미안합니다. 시인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밥이라도 한번 사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저 세상으로 가는 길이 이렇다면, 뭐가 두렵겠습니까, 혹은 무슨 아쉬움이 남고, 섭섭하고, 그렇겠습니까.
나도 가서,
'엄마'를 만날 것입니다.
어릴 적 그 개울가에서 모래성을 쌓다가 온 것처럼,
내일 또 나가서 얼마든지 놀다가 올 수 있는 것처럼, 홀가분하게 돌아온 것처럼,
가서,
'엄마'에게 다 얘기할 것입니다.
서러워 울지도 않고, 그냥 그 예전의 어릴 적에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다 얘기할 것입니다.
'엄마'는 오래 살지 못하고, 겨우 마흔여덟에 떠났으니까 듣고 싶은 얘기도 많을 것이고, 나도 털어놓고 할 얘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늘 이렇게 중얼거리며 지냅니다.
"엄마, 내가 그때 그 세상에 가거든 봐. 꼭 밝히고 싶은 것들이 있어."
가령 이런 이야기입니다.
"엄마 때문에, 엄마가 너무 일찍 이곳으로 와서 나는 정말 죽을 만큼, 아니 때로는 '나는 언제 죽나……' 하기도 했어. 미안하지만 자주는 아니더라도 딱 몇 번만 엄마 원망도 했어."
그렇지만, 그날 '엄마'를 만나면, 지금 벼르고 있는 일들이 다 시시하게 여겨질 지도 모릅니다.
'엄마'도 웃으며 이런 말만 할 지도 모릅니다.
"그래, 나처럼, 나를 닮아서 심장병이 걸렸는데도, 여러 번 고쳐 가며 오래오래 살 만큼, 그 머리가 하얗도록 그 세상이 좋았니?"
그러면서 또 묻겠지요.
"그래, 그애는 잘 있니?"
그 세상으로 가며 내 아내 걱정을 많이 했으니까요
"저 애에게 모든 걸 다 맡기고 가야 하다니……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하게 될 것입니다. 시인이 가르쳐 준 대답입니다.
"그래도 재밌었어요."
우리가 그렇게 하고 나면, 내가 '엄마'와 그렇게 만나고 나면,
이승의 나의 것들은, 모래성처럼 다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애 써서 쌓아 놓은 내 모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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