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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신은영 「만약에」

by 답설재 2012. 10. 8.

만약에

 

 

                                                                        신은영

 

 

당신을 사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언제, 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나를, 이라고 묻지는 않으시겠지요

당신에게 자유란 무엇입니까

 

당신이 시를 읽는다면 혹은 쓴다면

당신은 반드시 속았습니다

난 한 번도 시에 진실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진실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 전에 당신께서 진실을 마주할 생각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니면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으신가요

당신을 사랑한 사람은

당신을 위해 생명을 주었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영원히 산다면 어떻겠습니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은 인정할 것입니까

 

당신은 당신을 택할 것입니까 그를 택할 것입니까

당신을 위해 죽은 한 사람을 알게 된다면

자신이 왕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한평생 누군가의 보살핌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큰 물살을 거슬러 갈 수 있겠습니까

당신도 그를 위해

생명을 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 한 번 눈길이라도 줄 수 있겠습니까

 

 

 

 

──────────────

신은영 1985년 전주 출생. 2008년 『시인세계』 등단.

 

 

『현대문학』 2012년 3월호, 178~179쪽.

 

 

 

 

 

문학이 좋은 것은, 그것이 철학이나 교육학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소설이나 시를 보고, 그 시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그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보고

  그 소설을 쓴, 그 시를 쓴, 소설가, 시인을 붙잡고

  "이게 사실입니까? 당신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까?"

  "이게 모두 진실입니까?"

혹은

  "이게 교육적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시인, 소설가는 얼마나 난처하겠습니까?

 

  시인은, 「만약에」라는 제목을 달기는 했지만,

  이보다 더 절절할 수가 없는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처음으로 한번 진실해지자고 대어듭니다.

  모든 걸 걸고, 모든 걸 주었다고 고백합니다.

  영원을 살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포기하고, 당신을 사랑하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결코 왕(王)이 아닌 사람을

  왕으로 삼고,

  마침내 죽은 목숨이 되어 사랑한다는 이야기.

  그러므로 모든 것이 그 사랑으로 인하여 흘러간다는 이야기.

  당신이 그 사랑을 알기나 하느냐고 묻는 이야기.

  지금 그 사랑의 맹세에 대하여 확인하고 싶은 이야기.

  세상의 무엇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

  생명을 받아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이야기.

  영원을 약속해주는 종교보다 더 절절한 이야기. 

 

  문학이 좋은 것은,

  철학이나 교육학보다 더 진실한 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전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