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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

by 답설재 2012. 2. 27.

 

 

 

  ‘인문학으로 광고 만드는 남자’라고 소개되는 박웅현이라는 사람을 인터뷰한 기사를 봤습니다(조선일보, 2012.2.4, 토일섹션 Why? B1~2면, 한현우의 커튼 콜).

  인터뷰 중에 이런 질문과 답이 보였습니다.

 

― 한국에서 그렇게 아이를 키우면 무엇이 가장 힘듭니까.

 

"솔직히 말해서 불안감이죠. 과연 이렇게 키워도 잘 자랄 것인가 하는 불안감. 그렇지만 그것이 제 일이기도 해요. 회사에서도 어떤 판단을 하고 나서 팀장인 내가 불안해 보이면 팀 전체가 흔들려요. 그럴 땐 '내 판단이 옳다'고 믿고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죠. 아이가 중 3 때 제가 회사를 옮기게 돼서, 그 사이 3주간 유럽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때도 '3주나 학원에 빠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기에, '인생은 텅 빈 목걸이를 걸고 태어나서 얼마나 많은 진주알을 걸고 죽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진주알은 학원 안 빠진다고 생기는 게 아니고, 고마운 일들, 아름 다운 추억 때문에 생기는 거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진주알을 목표로 삼자'고 했죠. 정말 놀랐던 게, 그 3주 동안 아이 키가 3~4㎝ 자란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애를 쥐어짜고 있었나 하는 걸 다시 깨달았어요."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면서, 까짓 거 학교 결석을 그렇다 치더라도 그동안 학원을 가지 못하게 되는데, 그래도 괜찮은 걸까, 불안해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 솔직해집시다. 초등학교는 몰라도 중·고등학교에서는 “그래, 여행도 다녀야지. 편한 맘으로 다녀오렴.” 하고 쉽사리 허가하는 학교가 있기나 할까요? 더구나 학원에는 별도로 비싼 등록금까지 냈고, 진도가 쳐지면 어떻게 하나, 무슨 수로 따라잡나, 아무 걱정 없었다면 그 사람들은 이것저것 다 포기해버린 경우가 아닐까요? 

 

  그런데 3주간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보니까 아이의 키가 3~4cm나 자랐더랍니다. 그 여행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시켜야 합니까? 기자가 그렇게 이야기한 그 광고인을 소개한 부분을 찾아보았습니다.

 

   박웅현(51)은 광고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이 자본주의의 꽃에서 인공향(人工香)을 탈취해 왔다. 그는 "광고를 작품으로 생각한 적이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말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의 광고를 작품처럼 여긴다. 일찍이 동화책 '노란 토끼' 시리즈를 펴냈고 일상의 사진에 짧은 글을 붙인 책 '시선'을 내놨던 그는 2009년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어 최근엔 자신의 독서 편력을 강의한 책 '책은 도끼다'로 광고쟁이가 아니라 인문학 애호가의 본색을 드러냈다.

 

 

 

 

  학교에 대하여, 교육에 대하여 저렇게 평가한 저 광고인의 이야기가 틀린 것입니까, 맞는 것입니까? 맞기는 맞지만 아무나 말할 수 없는 것이고, 저이는 유명한, 혹은 특별한 광고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교육이란 저렇게 말하긴 해도 원래 그렇게 실천할 필요는 없는 것이거나 그렇게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까?

  혹 다른 나라는 이런 교육을 하지 않는데, 우리만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시험 문제의 정답을 잘 찾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이 변하는 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닙니까?

 

  왜 우리는 저런 비난, 비판을 들으면서도 그걸 실천하지 못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까?

  그가 대답한 내용 중에서 교육적으로 해석해야 마땅한 부분을 한군데만 더 옮기겠습니다.

 

  ― ‘아이는 스스로 진화하는 장난감’이란 표현을 썼죠.

 

“애가 6학년 때인가, 둘이 여행을 가는데 제가 길을 잘못 들었더니 조수석에 있던 아이가 ‘○○번 도로로 가야 한다고 그랬잖아’ 하고 야단을 치는 거예요. 현기증이 나서 차를 세웠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죠. ‘연아, 너 내 무릎에 앉아있던 꼬마였거든? 그런데 지금 네가 아빠를 야단치고 있네? 정말 놀랍지 않니?’ 그러니까 아이는 스스로 진화하는 장난감 맞죠. 그게 부모의 이기심이기도 해요. 그런데 부모들은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하죠. 이기심으로 키운 거죠. 애가 뭐 바란 거 있나요? 태어나게 해주세요 했나요? 즐겁게 낳고 키웠잖아요. 당신 이 즐거우려고 키웠으면서 뭘 그렇게 많이 바라요? 솔직히 부모가 무슨 숭고한 뜻으로 애 기르는 것 아니잖아요. 다 부모의 안달복달이고 욕심이에요. 부모의 욕심을 아이에게 투영해놓고 아이를 위하는 척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