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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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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간 '공주님'

by 답설재 2010. 9. 2.

 

문화일보, 2010.8.24. 29면.

  

 

 

덴마크 코펜하겐의 '인어공주'가 '난생 처음' 해외 나들이를 했답니다.

자의로 하는 여행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인어공주 동화로 유명한 동화작가 안데르센을 기리기 위해 1913년 조각가 에드바드 에릭슨이 만들어 코펜하겐 항에 세운 이래 줄곧 그 바위 위에 앉아서 매년 100만명의 관람객을 맞이했다지 않습니까?

"와! 97년 만에 처음 하는 여행!" 할 수도 있겠지만, 그 97년 동안 그렇게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해졌지 않았겠습니까?

아이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덴마크에 가면 인어공주를 만나봐야지!'

그렇게 꿈을 키워 가는 게 더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 인어공주 여기로 데리고 와 봐!"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꿈을 그대로 두는 것만 못한 것 아닐까요?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해버리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게 서글퍼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덴마크 코펜하겐시에서도 어떤 공무원들은 이 조각상의 해외 나들이를 반대했지만 결국 내년 5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상하이 엑스포에 출품하기로 결정했고, 이미 저렇게 옮겨버렸으니까요.

 

조각품인데 뭘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로뎅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도 오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조각품이야 옮겨가며 본다는 걸 전제로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에 비해 저 인어공주는 비교적 작은 조각품(높이 1.65미터)이라 하더라도 그 바위 위에 앉혀놓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어쨌든 돈으로 번쩍 들어나르는 걸 찬성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꿈 때문입니다.

 

저 인어공주가 다시 돌아갈 때까지 덴마크를 찾는 어린이들은 코펜하겐항에 그 인어공주상이 없다는 걸 알면 얼마나 실망스러울까, 그것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능하면, 시장이 나가서 일일이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과라도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린이 세계지도를 그릴 때 미국에는 '자유의 여신상', 프랑스에는 '에펠탑', 이탈리아에는 옛 '원형 경기장'을 그려넣듯이 덴마크 지도에는 꼭 저 인어공주상을 그려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앞으로는 그 덴마크라는 나라는 빈칸으로 남겨두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무슨 이유를 대고서 자리를 비우는 공주님을 우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자리를 비우고 다른 곳으로도 가버리는 '공주님'을 그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야기하기는 매우 난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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