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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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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서남표 총장

by 답설재 2010. 6. 29.

                                                                                            

조선일보 2010. 6. 5, A1.

 

                                                                                       

 

 

 

 

  KAIST의 총장이 된 서남표는 “수능성적 1~2점 차이가 능력의 차이라고 보는 데서 사교육이 비대해지고 있으므로 우리 대학은 수능성적을 보지 않고 면접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며 입학사정관제의 기치를 내건 이후 국가·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또 “우리도 곧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칼럼을 자주 써서 국민들에게 기대와 희망과 신념을 갖게 했다.

  주로 과학고등학교 졸업생 중에서  KAIST 신입생을 선발하던 방식을 바꾸어 일반계 고교생도 뽑았고, 교수들의 정년심사를 강화해 그때까지는 한 명도 탈락되지 않은 교수들을 대거 탈락시켰고, 100% 영어 강의를 의무화했고, 학생들은 전원 수업료를 내지 않던 시책을 바꾸어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제외시켰고, 고수익을 창출하는 혁신적 원천기술을 개발하겠다면서 온라인 전기차, 모바일 하버(움직이는 항구) 프로젝트를 주도했고, 그러한 노력으로 영국 더타임스 세계대학평가에서 232위(2005)였던 KAIST가 69위(2009)가 되게 했고, ……

 

  그렇게 해놓고는, 오는 7월말로 임기가 끝나게 되자 연임의사를 표시한 모양이다. 그것은, KAIST 이사회가 지난 15일 서 총장의 연임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으며, 연임이 여의치 않은 분위기가 있다는 신문기사로 밝혀졌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서 총장은 '어리석다'.

  그렇게 해놓고 어떻게 연임을 바라는가?

  사람들은 '총론'으로는 개혁을 하자고 할지 몰라도, '각론'에 들어가면 대체로 싫어한다. 그 길에는 위험 요소가 있고, 어쨌든 귀찮고, 신경 쓰이고,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하고, ……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선은 편하고,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전체적으로는 몰라도 나에게는 손해볼 것 없다고 생각할 사람이 더 많다.

  이런 것도 있다. 가령 세계대학평가에서 KAIST의 순위가 저 위로 올라간다면 개인적으로 손해를 보거나 희생을 해도 좋다고 할 사람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게 된다.

  서 총장은 훌륭한 과학자, 훌륭한 교육자, 훌륭한 행정가인지는 몰라도 '아주 쉬운 것'은 소홀히 했다.

 

  서 총장이 소홀히한 것은 또 있다.

  KAIST 교수들에게 물으면 그가 잘못한 일이 많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독선적이다’

  ‘의사소통에 미숙하다’

  ……

 

  이런 것도 있다.

  4년이든 5년이든 임기라는 건 짧다.

   

  KAIST 교수, 학생들 중에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순전히 의협심만으로 그의 잘못을 잘 지적해줄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우선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밖에서 뭘 안다고…… 모르면 가만히나 있어라!"

  신문 사설도 서남표 총장 이야기를 하면서 ‘개혁을 잘 하려는 리더라면 우선 내부화합으로 교수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지내 놓고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서남표 총장도 그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된 일이 뭐가 있느냐고 할 것이다. 정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로' 그게 아닌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서 총장은 그 경우까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에이, 어리석은 서남표 총장!

 

 

 

 

  위의 글을 이 블로그에 실은 이튿날(2010.6.30), 서남표 총장의 연임 문제에 교육과학기술부 고위층이 관련되어 있다는 기사가 보였고, 다시 7월 2일에는 18명이 참석한 이사회에서 16명의 찬성으로 서남표 총장의 연임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러한 보도를 접할 때마다 내가 이 글을 쓴 것이 부담스러워 얼른 삭제하고말까 싶기도 했다. 심지어 총장 연임이 결정되었다는 TV 뉴스에 등장한 서남표 총장이 여유롭게 웃는 모습도 보기 싫었다. 그 여유롭게 웃는 모습이 어쩌면 비굴한 모습 같기도 한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묘한 반응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은, 장난은 아니고, 전문가가 보면 참 가소로울 글도 내게는 그게 고역이어서 한 편을 쓴 다음에는 기운이 빠지기 일쑤이다. 그러니 내가 이 글을 삭제하고 싶었겠는가. 다만, 이 글을 탑재한 날짜와 시각이 저 위에 새겨져 있으니까 그게 나의 떳떳한 입장을 대변해줄 것이다.  지금까지는 나도 서남표 총장 지지자였다. 지난해까지의 수많은 강의에서 나는 그걸 자랑스럽게 밝혔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떨지 잘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가 KAIST를 잘 이끌고 가느냐 아니냐는 이제 순전히 그의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힘들겠지만 그는 그걸 알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면, 우리나라 교육 현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 이른바 '하드' 부분으로는 분명히 교육강국이지만, 세계 50위권 내에 들어갈 대학은 하나도 없고, 100위권 대학도 드물다. 그런 대학이 되기 싫은 학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그건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그건 간단하지는 않지만 나타나는 현상으로는 한심할 정도로 단순하다. 우리의 초·중·고 교육은 외우고, ○×표시를 하고, ①②③④⑤ 중에서 고르고, (  ) 안에 단답을 쓰는 데 익숙해지는 교육이라는 점이다.  그런 교육에 치중하는 대학입시 중심교육부터 바꾸지 않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힘들지만 그것부터 고쳐야 한다. 그것부터 고치지 않으면 교육은, 아이들에게는 언제나 '고역(苦役)'이라는 걸 모두가 알아야 한다. 안다면 고쳐야 한다. 어느 후진국에서도 이런 교육은 하지 않는다.

 

  그걸 고치지 않은 채 정상적인 교육을 구상하니까 교육 지도자마다 서로 다른 시책을 내걸게 된다. 한때는 '전인교육'을 부르짖게 되고, 한때는 '열린교육'을 하자고 하고, 한때는 '체험교육'을 강화하자고 하고, 한때는 '교육과정 정상화' '자기주도적 학습'을 부르짖다가, 한때는 '인성교육', '창의성 교육'을 이야기하게 되고, '혁신학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우리는 적용해보지 않은 교육이론은 한가지도 없고, 제대로 실천하는 이론은 지식주입식 암기교육밖에 없는 나라가 되어 있다. 아주 형편 없는 나라도 실천하는 교육방법을 우리만 외면하고 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지 않는 교육,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게 하고, 스스로 학습해 나가게 하는, 참으로 간단하고 단순하고 쉽고 원초적인 방법이다. 그게 진짜 교육이라는 걸 모르는 교사는 우리나라에는 단 한 명도 없다. 다만 우리는 그걸 실천할 수가 없는 질곡에 빠져 있을 뿐이다.

 

                                                                                                            2011.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