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신문 보기

「학교 종교교육 바꾸라는 대법 판결」

by 답설재 2010. 5. 3.

어느 신문의 사설입니다.

 

 

종교가 없던 강의석(24·서울대 법대) 씨는 고교평준화에 따른 강제 배정으로 기독교 학교인 대광고에 입학했다. 강 씨는 매일 아침 찬송과 기도를 하고, 매주 수요 예배에 참석해야 했다. 기독교 교리를 가르치는 종교 수업에도 들어가야 했다. 대체 수업은 없었다. 매년 3박 4일 동안 기도와 성경 읽기를 하는 생활관 교육도 받았다. 2004년 강 씨는 학내 종교 자유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하다 퇴학당했고 이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2심 판단은 엇갈렸지만 대법원은 어제 강 씨의 손을 들어 줬다. 학교가 특정 종교 교육을 하더라도 학생이 대체 과목을 듣거나 종교 수업 참여를 거부할 수 있게 하는 등 헌법상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고교평준화 정책으로 대다수 학생들이 종교적 신념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를 배정받는 현실에서, 대법원 판결은 학교 종교 교육의 요건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특정 종교 수업과 이를 통한 선교라는 종교 학교들의 관행이 개선되길 기대한다.

…(후략)…

 

 

이런 문제가 어떻게 대법원까지 가게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교육과정(국가 기준) 정책을 담당했던 경험으로는 분통이 터질 일입니다. 대법원이라는 곳에서는, 교육과정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이 보면 아주 상식적인 문제인데도 그걸 판단해 달라고 하니까 씨익 웃으며 '이것쯤이야' 하고는 "알았어요. 판단해줄게요." 했을 지도 모릅니다.

 

나는 교육부에서 제7차 교육과정의 적용을 위해 혼신을 다 바치다가 드디어 고등학교 3학년에까지 적용되기 시작한 2004년 9월에 학교로 나갔습니다. 그 제7차 교육과정의 총론에서 관련 규정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학교가 종교 과목을 부과할 때에는 종교 이외의 과목을 포함, 복수로 과목을 편성하여 학생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처럼 분명한 지침을 잘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교육과정 기준이 '고시'라는 이름의 미약한 문서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시'거나 '공포'거나 정부 스스로 그것을 중시·존중하면 국민들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도 교육과정을 중시하면 좋겠습니다. 독도가 자기네 땅 시네마현 다케시마 섬이라고 한 일본은, 그렇게 명시한 '교육과정 해설'까지 문부과학상과 관방장관이 함께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2008년 7월,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

 

법원에서 교육과정 기준에 이미 다 나타나 있는 것을 자기네들이 새로 판단해주는 것도, 교육과정 기준을 잘 지키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잘 지킨다고 말하려면 "그건 교육과학기술부에 물어보십시오" 해야 옳은 일 아닙니까?

 

다시 생각해보겠습니다. 도대체 법원에서는 이런 내용에 대해 왜 재판을 해주는 것일까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부 고시 교육과정 기준에 다 나타나 있으니, 그대로 해석하고 적용하면 된다."고 해주면 안 되는 것일까요? 그런 걸 법률용어로 뭐라고 합니까? 기각?

 

종교교육에 대해서 교육과정 기준에 이렇게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는 사실을, 교육부 직원들은 다 알고 있을까요?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교육부에 있다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교육부 직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다 알고 있었답니까? 그러면 왜 대법원까지 나서서 재판하는 것을 두고만 봤답니까?

과목 개설 말고도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고 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과목 개설에 대해 저렇게 규정되어 있으면 다른 건 그 원리에 맞추어 해석해야 옳은 것 아닙니까?

 

교육부 직원 중에도 사실은 "학교에서는 종교교육을 그렇게 해도 된다"는, 말하자면 교육과정 기준의 내용과 다른 판결을 기다린 사람도 있기 때문에 이런 재판이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요?

기우입니까? 복잡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까? 이게 왜 복잡합니까?

 

 

 

...........................................................

한국일보, 2010년 4월 23일, 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