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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전쟁6

여느 날 아침처럼 마음이 불편한 시절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 어쩌자고 그러는지 전쟁은 하고 있지 엄청난 무기를 만들고 있는가 하면 강대국 지도자들은 옛 골목대장처럼 다 내 마음대로 해야 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으스대기도 하지 그래서 학교 다닐 때 배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던 그 가르침은 지금 생각하니까 어처구니없구나 싶은가 하면 물가는 이미 '다' 올랐는데 더 오르겠고 언제까지일지 예측도 못하겠다고 하지 그러거나 말거나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을 점점 더 많이 보여주고 여기저기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하면 나라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는 10년 20년 전에 하던 말일 경우도 흔해서 '지금도 저러는구나' 싶지 인터넷 강국이 분명한데 뭐가 고장 나서 며칠째 불통이라고 하지...... ​ 그러나 쌀쌀한 이 가.. 2022. 10. 18.
하종오 「아프가니스탄 아이」 아프가니스탄 아이 하종오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빠 엄마 따라 한국으로 온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에 남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각할 것이다 가을 들판에서 익어가는 벼들을 바라보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짓던 농사를 떠올려볼 것이다 탈레반이 총을 쏘고 포탄을 터뜨리며 왜 사람들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했는지, 왜 가족이 다급하게 집을 떠나 비행기를 타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아이는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전쟁만 끝난다면, 전쟁만 하지 않는다면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는 생활이 좋다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몹시 걱정할 것이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빠 엄마 따라 한국으로 온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에 남은 친구들을 생각할 것이다 가을볕이 따가운 날엔 운동장에서 공놀이하다가 가을비가 내리는 날엔 숙소에서 골목길을 내다보다가 축구 골대가 있는.. 2022. 3. 16.
바퀴벌레와 숙명론 어느 날 오후 그가 학자의 책 가게에 들렀더니 4명의 말수 좋은 젊은이가 중세에 사용된 바퀴벌레 퇴치법에 대해 한창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비드 신부밖에 읽은 적 없는 책에 대한 아우렐리아노의 기호를 알고 있는 주인은 아버지 같은 심술로 그에게 토론에 참가하도록 권했다. 그러자 그는 즉석에서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곤충인 바퀴벌레는 이미 구약성서에서 슬리퍼로 혼쭐이 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종자는 붕산을 묻힌 토마토에서 설탕이 든 밀가루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퇴치법을 능가한다고 설명했다. 1,600가지에 이르는 이 종자는 인간이 원시 시대부터 모든 생물―인간을 포함해―에게 가해 온 집요하고 비정한 박해에도 잘 견디어 왔다. 그 박해의 극심함은 생식 본능과는 별도로 인간에게는 보다 명확하고 보다 강한 바퀴 .. 2022. 1. 7.
이스마엘 베아 《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집으로 가는 길》 a long way gone: memoirs of a boy soldier 송은주 옮김, 북스코프 2007 1 "집으로 가는 길"……. '따듯한 길' 책 이름만 들었을 땐 그런 느낌뿐이었습니다. 숲속을 전진해 나가면서 점령하여 기지로 삼은 마을들이 어느새 내 집이 되었다. 우리 분대가 내 가족이었고, 내 총이 나를 먹여 살리고 지켜주었다. 내가 따라야 할 규칙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뿐이었다. 내 사고도 그 범위 이상을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2년간 전투를 했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는 살인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어린 시절은 끝나버렸고, 내 심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달이 뜨고 해가 뜨면 밤낮이 오고 가는 줄만 알지.. 2017. 5. 25.
《懲毖錄》 柳成龍 《懲毖錄》 李民樹 역, 을유문화사 1992(초판17쇄) 자서(自序) <징비록(懲毖錄)>이란 무엇인가. 임진란 뒤의 일을 기록한 글이다. 여기에 간혹, 난 이전의 일까지 섞여 있는 것은 난의 발단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생각하면 임진의 화(禍)야말로 참담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십.. 2016. 6. 17.
대실망- '미리 목을 졸라 숨을 끊어 주는 은혜'도 없는 세상 버트런드 러셀은 '인류에 해를 끼친 관념들'이라는 글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간의 불행은 아마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인간과 무관한 환경이 가하는 불행이고, 둘째는 다른 인간들이 가하는 불행이다. 환경이 가져다주는 불행? 바로 '천재지변' '쓰나미' '화산'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고, 인간들이 인간들에게 가하는 불행에 대해서는 '그래, 맞아! 불합리하거나 이기적인 인간 때문에 속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했는데, 글을 읽어가면서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싶었고, 드디어 '세상의 한 단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갈 뻔했구나!' 할 정도였는데, 그것은 한 마디로 세상에 대한 '대실망(大失望)', 혹은 새로 생긴 좀 익살스러운 용어로는 세상에 대한 '급 실망(急失望.. 2015. 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