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成龍 《懲毖錄》
李民樹 역, 을유문화사 1992(초판17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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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굳이 "임금의 사대하는 마음" 같은 부끄러운 시대상이 나타난 부분을 문제삼을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2 꼭 그렇게 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이야기할 것 없이 아예 오늘까지의 우리 역사를 이야기하자는 제안이 떳떳할 것이다.
오로지 "임진의 화(禍)야말로 참담하기 짝이 없는 일" "그러고도 오늘날이 있다는 것은 진정 하늘이 도운 것", "지나간 일을 징계(懲)하고, 뒷근심이 있을까 삼가(毖)한다"는 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에 충분할 온갖 이야기가 '숨김없이' 드러나 있다.
Ⅱ
전쟁에 대한 어설프고 어수룩한 대비, 무방비, 그런 와중에서도 벌어지는 관리들의 부정부패, 정의로운 인재의 억울한 죽음, 흉흉한 민심, 용감무쌍한 장수와 도망다니는 장수, 그보다도 못한 관리, 싸울 의지도 없으면서 오히려 정의로운 지도자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관리와 장수, 명나라 장수의 머뭇거림과 기피, 지지부진한 이동, 조선에 대한 행패, 일본과의 강화 의지, 연이은 패전, 백성들의 참혹한 죽음, 굶주림……
그럼에도 어디에나 의병이 있었고, 나라를 구하려는 일념으로 일관한 관리와 장수도 있었고, 누구보다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류성룡의 재능은 고난 속의 지혜로도 빛났지만, 이러한 인물들, 사건들에 대한 기록도 놀라운 것이었다. 실명이 기록되어 있어 싫어 할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Ⅲ
《징비록》은 이순신 장군의 죽음으로 끝나고 있다.
교사라면 이 책이 국보라는 걸 가르치기보다는―그게 교육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렇게 끝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도, 그렇게 한 이유, 그 의미 같은 걸 '설명'하지는 말고 '토론'하게 하면 좋겠다.
설명하기를 좋아하는 이 나라 교육이지만, 도대체 뭘 설명하겠는가. 그렇게 설명으로 일관하니까 나중에 어른이 되면 자신의 말만 해대고 남의 말은 듣지 않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토론다운 토론이 거의 부재하는 나라가 되어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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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이순신은 세 나라 군대를 '상대'하였다. 고민의 대상은 실로 세 나라의 군대였다. 어느 경우나 '가장' 어려운 경우여서 오늘날 우리에게 교육적·군사적·외교적으로 절체절명이라는 것의 교훈이 되어야 하는 것도 확실하다.
더구나 명나라 군대는 현실적으로 우리 군대나 왜적에 비해 오히려 더 어려운 연구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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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징비록》은 왜적의 침략을 막지 못한 참회록, 반성문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가 어떤 고난을 겪게 되는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짓을 하게 되는지, 그로 인한 어려움은 어떤 것인지 다 보여주었다.
이 책으로써 우리는 전쟁의 참화 속에 우리 민족이 그 굴욕을 어떻게 맞이했는지, 그 과정에서의 조마조마함과 답답함을 실제처럼 경험할 수 있다.
조선(우리 조상들)은 이 '반성문'을 전쟁의 종료와 함께 곧 잊고 말았다. 임진왜란으로부터 40년, 병자호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다시 한번 굴욕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을 고스란히 증명해주었다.
Ⅵ
시진핑(習近平) 당시 중국 부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국무총리 주최 환영 만찬에서 임진왜란 당시 병조판서·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이 명(明)과 원군 교섭을 벌인 일화가 화제가 되었지만 시 부주석은 그 역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고, 이튿날 류성룡의 후손인 어느 장관이 시 부주석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장관은 어떤 의미로 이 책을 선물했을지, 두고두고 그 기사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임진왜란 당시와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또 지금 누가 이 책을 읽고 있는지,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내가 이 책을 선물한다면 상대방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것도 생각해보았다.
① 잘난 체 하기는……
② 꼰대4는 어쩔 수 없다니까?
③ 이런 책이 다 있다니! 잘 읽어봐야지!
④ 요즘에도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 있구나.
⑤ 이게 뭐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긴 한데……
⑥ ( )
- 포켓판, 그리고 아무래도 읽기에 불편한 세로쓰기 책. [본문으로]
- 심지어 본문에는 이런 내용도 보였습니다...'당시 우리나라 사신은 연달아 요동에 들어가 사태가 급함을 알리고 구원병을 청했으며 또 중국에 합병할 것을 청했던 것이다. 그때 생각으로는 적병이 평양을 함락시키고 보니 그 형세가 강대해서 금시에 압록강까지 치밀어올라올 것 같았다. 그래서 이같이 위급한 사태가 없다고 하여 중국에 합병하려고까지 했던 것이다.(111) [본문으로]
- 225~226쪽(징비록 끝부분). [본문으로]
- 1.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先生)’을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아버지’를 이르는 말. 3. 학생들의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DAUM 백과사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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