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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책 보기의 즐거움

이스마엘 베아 《집으로 가는 길》

by 답설재 2017. 5. 25.

이스마엘 베아 《집으로 가는 길》

a long way gone: memoirs of a boy soldier

송은주 옮김, 북스코프 2007

 

 

 

 

 

 

 

 

    1

 

"집으로 가는 길"…….

'따듯한 길' 책 이름만 들었을 땐 그런 느낌뿐이었습니다.

 

숲속을 전진해 나가면서 점령하여 기지로 삼은 마을들이 어느새 내 집이 되었다. 우리 분대가 내 가족이었고, 내 총이 나를 먹여 살리고 지켜주었다. 내가 따라야 할 규칙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뿐이었다. 내 사고도 그 범위 이상을 넘어가지 않았다. 우리는 2년간 전투를 했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과는 살인이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동정심을 느끼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어린 시절은 끝나버렸고, 내 심장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달이 뜨고 해가 뜨면 밤낮이 오고 가는 줄만 알지, 그날이 일요일인지 금요일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래도 나는 내 삶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 (184)

 

 

    2

 

잔인·잔혹, 무자비, 폭력과 공포,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생생하게, 다 보려면 이 책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두막에 앉아 마리화나를 피우며 그들이 빗속에서 땅을 파는 모습을 구경했다. 동작이 느려질 때마다 그들 주위로 총을 쏘면, 다시 부지런히 땅을 팠다. 땅을 다 판 뒤에는 그들을 묶고 총검으로 발을 찔렀다. 비명을 지르는 자가 있으면 우리는 깔깔대고 웃으면서 입 다물라고 발길질을 했다. 그런 다음 한 명씩 구멍에 굴려넣고 젖은 진흙을 위에 덮었다. 우리가 흙을 퍼넣자, 다들 겁에 질려 몸을 일으키면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우리가 구멍에 겨눈 총구를 보고는 다시 드러누워 핏기 가신 슬픈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흙 밑에서 꿈틀거렸다. 공기를 마시려고 밑에서 헐떡이는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움직임이 차츰 잠잠해진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자리를 떴다. "그래도 저놈들은 땅에 묻히기는 했네." 한 군인의 말에 다들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불가로 돌아와 몸을 덥히면서 나는 다시 슬며시 웃었다.(221~222)

 

포로들 중 내게 총을 쏜 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몰랐지만, 그때에는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그래서 모두 여섯이었던 포로들을 꽁꽁 묶어 일렬로 세웠다. 나는 그들의 발에 총을 쏘고 온종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런 다음 머리에 총을 쏘아 영원히 입을 다물게 했다. 한 명씩 쏠 때마다 내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 포로의 눈빛에서 희망이 사라지고 평온해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음산한 눈빛이 짜증을 돋구었다.(233~234)

 

이런 장면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꼭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총을 들고 마리화나를 피우며 사람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 열두 살 때였고,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소설처럼 읽히는 실화라는 것입니다.

 

 

    3

 

이스마엘 베아 Ishmael Beah는 1980년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에라리온이 어디지?' 그러면 이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여기기 쉬울 것입니다.

 

랩(rap)과 힙합(hiphop)을 좋아하던 그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이웃 마을의 장기자랑에 나가려고 집을 나섰다가 그 길로 어른들의 전쟁 속에서 어느새 총을 들고 전쟁터를 누비는 소년병이 되어 영원히 불가능하게 된 귀가 여행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게 됩니다.

 

 

    4

 

이런 이야기를 읽었으면서도 전쟁을 해야 하는지 묻고 싶어 하며 읽었습니다.

 

전쟁에 대해 별의별 소문이 다 돌았지만 우리와 상관없는 머나먼 딴 세상 이야기로만 들렸다.(11)

 

그날은 기이하리만치 평소와 똑같았다. 흰 구름 사이로 태양이 평화롭게 흘러가고, 새들은 나무 위에서 지저귀고, 나무들은 잔잔한 바람에 맞추어 춤추듯 흔들렸다. '이건 말도 안 돼.'(18)

 

그날 밤, 마을에 생명을 주는 것은 사람들의 육체적 존재와 기운이라는 사실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게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니 마을은 섬뜩하게 변했다. 밤은 더 어두웠고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평소 같았으면 해 떨어지기 전 이른 저녁부터 귀뚜라미와 새들이 울었을 텐데 그날만큼은 그마저 조용했고 삽시간에 어둠이 깔렸다. 자연조차 다가올 일을 두려워하는 듯, 하늘에는 달도 뜨지 않았고 바람 한 점 없었다.(34)

 

시에라리온, 저 아프리카의 먼 나라, 모그브웨모라는 마을의 전쟁은 '별일이 아니라는 듯'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한다면 이런 전쟁을 할 줄 아는 인간, 그러면서도 종교를 이야기하고 예술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아주" 싫어졌습니다.

 

 

    5

 

*  '잘 살지도 못하면서 전쟁까지 해야 하나?'

*  '폭력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해지는 게 인간이다.'

*  '전쟁은, 적과의 싸움, 총이나 포탄에 맞아 죽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일이고 무서운 일이다.'

*  '전쟁은 의식주, 가정, 인간관계 등의 당연한 가치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

 

내가 센터를 떠난 뒤, 맘부는 그의 가족이 그를 받아주기를 거부한 탓에 다시 전선으로 돌아갔다.(263)

아침 먹으라도 부르는 목소리에도 참을 수 없이 화가 치솟아 (……) 우리는 우울하고 불만이 가득했다. 총과 마약이 없었기 때문이다.(202)

수돗물을 틀 때마다 항상 수돗물 대신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 종종 아이들이 "반군들이 오고 있다!"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방을 뛰쳐나가고, 더 어린 아이들은 바위 옆에 앉아 흐느끼면서 우리에게 그 바위가 자기들의 죽은 부모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매복했다가 직원들을 기습하여 그들을 꽁꽁 묶고 (……) (212~213)

나는 약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잠자는 법을 다시 배우는 데 몇 달이 걸렸다. (……) 남자가 내 목을 톱질할 때면 칼날이 살 속을 파고드는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218)

  "너희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도 진절머리가 났다.(234)

 

*  '전쟁은 단순히 죽이고 죽는 일보다 그 후유증이 더 무서운 것이다.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다시 머나먼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온갖 생각들이 교차했는데 적으려니까 이것만 떠오르고 말았습니다. …… 전쟁에 대해 진실만을 전하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