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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저승사자7

고성배 《한국요괴도감》 고성배 《한국요괴도감》 위즈덤하우스 2019 1 내게 몇 권만 가지고 떠나라면 꼭 선택해야 할 책입니다. 책을 만든 방법부터 특이한 '한국 요괴 도감'! 선철(線綴), 반양장본(半洋裝本)? "속장을 실로 매고 겉장을 접착시켜 씌운 다음 속장과 겉장을 동시에 마무른 책". 그 설명이 맞긴 한데 '등표지'(책장에 꽂아 놓았을 때 세로로 책 제목이 보이는 부분)가 없습니다. 아래위 입술이 없으면 턱뼈에 이빨이 앙상하게 붙어 있을 흉측한 해골의 모습처럼. 그 대신(등표지가 없는 대신), 아랫부분에 저렇게 다홍치마처럼 책싸개가 있어 등표지 구실을 하는 거기에 책 이름이 있어서 책싸개를 벗겨버리고 보관하긴 난처할 것입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제책(製冊)에 무슨 하자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2020. 3. 5.
귀신은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귀신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런 말을 들을거라면 뜸을 들이는 것보다는 내친김에 이야기하고 말겠습니다. 귀신조차 없다면 영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귀신제도(鬼神制度)'가 있어야 잘하면 귀신 중에 격이 제일 낮다는 저승사자 정도는 한번 해볼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싶어진 것입니다. 저승사자는 초짜 귀신이 한다는 게 정설(定說)입니다. 게다가 저승사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입장에서 보면 다 면식범(面識犯)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어디에 사는 아무개를 데려오라!" 하면 얼른 "그 사람이라면 제가 잘 압니다. 제가 가서 데려오겠습니다." 하면 될 것입니다. '귀신은 없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은, 그동안 막.. 2014. 6. 26.
『귀신백과사전』 이현 글·김경희 그림·조현설 감수, 『귀신백과사전』(푸른숲주니어, 2010) # 외손자는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녀석은 귀신에 대해 '천착(穿鑿)'하고 있는지 걸핏하면 자다가 깨어 제 아비어미의 잠을 설치게 한답니다. 그럴 때마다 물으면 귀신 꿈을 꾸었다는 것이고, 그런 날 낮에는 틀.. 2011. 7. 3.
남진우 「꽃구경 가다」 꽃구경 가다 남진우 봄날 피어나는 꽃 옆엔 으레 저승사자가 하나씩 붙어 있다 봄날 피어나는 꽃 옆에 다가가면 저승사자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오라, 너도 꽃구경 온 게로구나 이 꽃 저 꽃보다 나랑 진짜 꽃구경하러 갈까 한다 저승사자 손에 이끌려 꽃밭 사이 무수한 꽃들 위에 엎으러지고 뒤집어지다가 하늘하늘 져 내리는 꽃잎을 이마로 받고 가슴으로 받고 팔다리로 받다가 아 이 한세상 꽃처럼 속절없이 살다 가는구나 싶어 고개를 들면 저승사자는 그윽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길가 꽃그늘에 앉아 잠시 숨 고르고 꽃들이 내뿜는 열기 식히노라면 저무는 하늘에 이제 마악 별이 돋아나고 내가 가야 할 길 끝에 환히 열린 꽃마당이 보인다 저승 대문 닫히기 전 저 꽃마저 보지 않으련 은근히 속삭이는 저승사자 뒤를 따라 걸어가는데 .. 2011. 1. 24.
저승사자와 함께 가는 길 Ⅰ 저승사자는 정말로 그림이나 영화에 나오는 그런 모습일까요?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갓을 쓰고, 이목구비가 특이하게 뚜렷이 보이도록 하얗게 화장한 모습. 어느 유명 인사가 생전에 저승사자의 그런 모습이 연상되는 화장을 자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왜 괴기스럽게 보이는 화장을 한 것일까요? Ⅱ 하기야 수많은 저승사자가 어마어마하게 용감해보이는 장군처럼 생겼다거나, 시쳇말로 '꽃미남'처럼 생겼다거나, 연약한 여성 차림이거나, 하다못해 우리처럼 이렇게 평범한 모습이라면, 누가 괴기스럽다고 하겠습니까. 누가 순순히 따라나서겠습니까? 그런 모습의 저승사자라면 저승으로 가자고 할 때 일단 어리광 같은 걸 부려보거나, 떼를 써보거나, 구구한 사정을 늘어놓아 보거나, 도저히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은 기세.. 2010. 8. 23.
저승사자는 아는 사람이다 Ⅱ 저승사자는 아는 사람이다 윤제림 (1959~ ) 저승사자 따라가던 사람이 저승사자가 되어 옵니다. 회심곡(回心曲)에선 활대같이 굽은 길로 살대같이 달려온다고 그려지는 사람. 그러나 저승사자도 백인백색. 나같이 둔한 사람은 벼랑길 천리를 제 발로 기어옵니다. 산허리 하나를 도는 데도 한나절, 만고강산 부지하세월입니다. 날 듯이 걸으라는 황천보행법도 못다 익히고 허구렁길 밝히는 주문도 자꾸 잊어서 밤낮 헛발입니다. 죽은 사람 데리고 돌아갈 일이 걱정입니다. 저승사자가 병아리 귀신보다 허둥거리면 무슨 망신이겠어요. 그러나 아무리 못나도 귀신은 귀신이어서 아득한 천지간을 수도 없이 자빠지고 구르다 보니 길 끝입니다. 문을 여니 구청 앞 버스 정류장. 여기서부터는 자신 있습니다. 아직은 이쪽이 더 익숙합니다. 살.. 2009. 5. 8.
알고보면 우리와 친밀한 저승사자 학교에 근무하니까 대체로 교장이 나이가 가장 많아서 겸연쩍게 노인 취급을 당하는 수도 있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새파란(?) 젊은이들에 비해 '노인은 노인'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가을이어서 그런가요? 10월이고 날씨조차 '가을맞고' 그러니까 '올해도 거의 다 갔구나' 싶어서 서글퍼집니다. 지난 3월(그러니까 저쪽 학교에 근무할 때), 이 블로그의 그 글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람」의 주인공인 함수곤 교수께서 짤막한 글을 하나 달라고 해서 '알고 보면 우리와 친밀한 사이인 저승사자'란 글을 써주었는데 다음과 같이 소개되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저도 이제 "젊은이" 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다 늙어서 건강하게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은 세태는 정말 싫습니다. 그런 이들은 이 세상이 그렇게 좋은 걸까요? 오늘.. 2007.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