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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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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by 답설재 2024. 10. 4.

욘 포세 《아침 그리고 저녁》

박경희 옮김, 문학동네 2019

 

 

 

 

 

 

 

홀멘 섬 어부 올라이의 아내 마르타가 아이를 출산하고 있다. 올라이와 산파 안나가 혼신을 다하고 있다. 출산은 모든 것을 거는 일이다. 올라이는 초조하고 불안하고 그래서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너무도 사랑하는 딸 마그다에 이어 이번에는 자신처럼, 대대로 그랬던 것처럼 장차 어부가 될 사내아이(요한네스)가 태어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 아이가 이제 곧 나온다, 마르타, 아이의 어머니는 고통으로 비명을 지른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 물고기, 집, 그릇,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올라이는 생각한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생각한다, 인간이 무에서 무 같은, 그런 것을 생각할 수는 있다 해도, 그것만은 아닌 것이, 그 이상의 많은 것이 있다, 하지만 그 다른 것들이란 무엇인가?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그건 신의 영혼이 아니겠는가, (...)

 

 

 

요한네스는 아내 에르나와 사별하고 혼자 산다. 쓸쓸하다. 아버지 올라이와의 사이는 원만치 않았다. 일곱 자녀 중 막내딸 싱네가 자주 찾아와 보살펴 준다.

 

그는 먹던 빵을 다 먹기 전에 새 빵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고, 낭비벽이 있었던 적이 전혀 없었다. 검소해야 했다, 그와 에르나가 여러 아이를 데리고 달리 어떻게 헤쳐나갈 수가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바다에 나가 저녁까지 고되게 일해도 집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여느 날과 다른 느낌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고 브라운 치즈를 얹은 빵을 먹으며 오늘은 뭘 할까 궁리하고 집 안을 둘러보며 밝지 않았던 생애를 회상한다. 막내딸 싱네를 찾아가 볼까 하다가 너무 일러서 여느 때처럼 부두로 내려간다.

기이하게도 죽은 친구 페테르를 만나 종일 함께 지낸다. 꽃게는 많이 잡았지만 아무도 지나가지 않아서 한 마리도 팔지 못했다. 요한네스가 지나가는 노처녀 안나 페테르센을 따라가 데이트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고, 두 아가씨(마르타, 에르나)가 그저 마음만 흔들어 놓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요한네스는 아내 에르나를 만나지만 그녀는 곧 사라졌고, 막내딸 싱네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지나갔다.

 

다시 만난 페테르는 요한네스에게 자네는 죽었으니 이제 떠나자고, 저 세상으로 가도록 도와주겠다고 한다. 두 영혼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지문은 생략하고 옮겼다).

 

 

지금 서쪽 만(灣)으로 가는 건가?

그래,

거기서 뭘 하는데?

이제 떠나는 거야, 자네와 내가,

그렇군,

내 고깃배를 타고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거지,

그래 자네가 알아서 하게 페테르,

그래야지 그럼,

(...)

어디로 가는데?

아니 자네는 아직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먼,

목적지가 없나?

없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위험한가?

위험하지는 않아, 위험하다는 것도 말 아닌가, 우리가 가는 곳에는 말이란 게 없다네,

아픈가?

우리가 가는 곳엔 몸이란 게 없다네, 그러니 아플 것도 없지,

하지만 영혼은, 영혼은 아프지 않단 말인가?

우리가 가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좋은가, 그곳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 하지만 거대하고 고요하고 잔잔히 떨리며 빛이 나지, 환하기도 해,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될 걸세, 

그래 페테르 자네로군, 페테르 자네야,

이제 그렇게 두리번거려서는 안 된다네 요한네스, 이제 하늘만 쳐다보고 파도소리에 귀 기울여야 해, 모터소리는 이제 안 들리지, 그렇지?

안 들리는군,

한기도 들지 않을 거야,

그렇군,

그리고 무섭지도 않고,

그렇군, 하지만 에르나, 에르나도 거기 있나?

자네가 사랑하는 건 거기 다 있다네, 사랑하지 않는 건 없고 말이야,

그렇다면 마그다, 내 누이도 거기 있나?

그럼 물론이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죽었는데 말인가,

그래 그렇다네, 그럼 그렇고말고,

나갈 수 있으려나, 파도가 높은데다 비바람까지 부는데?

갈 수 있다네,

(...)

 

 

........................................................

 

P.S. ① 작가 욘 포세는 어떤 사람인지, 이 소설의 문체나 특징, 전형적인 독후감 작성에 필요한 사항들은 옮긴이의 말 "『아침 그리고 저녁』삶과 죽음의 원형을 담은 액자"를 보면 된다.

나는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이고 잊고 싶지 않은 소설은 처음 봤다.

 

P.S. ② 이 책은 '2024 독서의 달 사서들이 읽은 도서(BOOKS WE PRETEND WE'VE READ)'라는 한 장 짜리 리플릿의 목록에 들어 있는 책이다. 내가 이 책 좀 빌려달라고 하자 사서는 지하창고에 가서 갖고 와야 하니까 좀 기다려 달라고 했다.

 

P.S. ③ 대화를 저렇게 옮긴 것은, 나중에 페테르가 요한네스에게 뭐라고 했지? 싶을 때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저승사자나 저승 가는 길도 그렇고 바다(혹은 강)를 건너는 것도 그렇다. 나는 요한네스가 부러웠다. 나를 데리러 오면 좋겠다 싶은 나의 친구는 일찍 죽었다. 오래되어 그가 나를 기억해 줄지 그게 좀 걱정이다. 그 친구가 사정이 안 된다면 내가 좀 가르친 적이 있는 그 아이라도 좋겠다. 그 아이가 1990년 가을 어느 날처럼 나를 만나자마자 한마디 말도 않고 또 하염없이 울면 어떻게 하나 싶긴 하지만 그건 당연히 내 몫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