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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설목6

류병숙 「물의 주머니」 물의 주머니 류병숙 개울물은 주머니를 가졌다. 물주름으로 만든 물결 주머니 안에는 달랑, 음표만 넣어 오늘도 여행간다. 가면서 얄랑얄랑 새어나오는 노래 물고기들에게 들꽃들에게 나누어주며 간다 얄랑얄랑 간다. -------------------------------------- *제72회 洛江詩祭 시선집 설목의 카페 《오늘의 동시문학》에서 이 동시를 봤습니다. '물결 주머니'를 가진 시인, 그 시인의 마음이 보고 싶었습니다. 시인에게나 그 누구에게나 시름이야 왜 없겠습니까만 이 시를 읽는 동안은 괜찮아집니다. 읽은 글 굳이 다시 읽지 않는데 '물의 주머니'는 여전히 즐거워서 '얘기가 어떻게 이어졌지?' 다시 찾아 읽게 됩니다. 들꽃도 저버린 늦가을, 그래도 그 개울물 보러 가고 싶어집니다. 시인에게 이런 .. 2022. 10. 30.
동시를 읽는 이유「섭이가 지각한 이유」의 경우 내 친구 설목은 《오늘의 동시문학》이라는 계간지를 내고 있었습니다. 계간이니까 47호라면 대략 12년인데 그런 책을 사보는 이가 거의 없는데도 십수 년 책을 냈으니, 그것도 재단 같은 걸 만들어 어디서 보조도 받고 공사 간 찬조도 받고 하지 않고 거의 사비로 그 짓을 했으니 요즘 말론 미친 짓이었겠지요. 그러면서 2015년 봄·여름 호가 마지막이었지요, 아마? 지금은 폐간되고 인터넷 카페("오늘의 동시문학")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그 카페에 들어가 봅니다. 무슨 낙으로 그러는지, 평생 동시를 쓰고 읽으며 사는 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을, 그러니까 그들의 작품(동시)을 나는 웬만하면 "좋다"고 합니다. '좋다고 한다'? 당연히 그렇게 표현해야 합니다. 나는 그때(.. 2022. 1. 18.
김동원 「나비 수첩」 나비 수첩 / 김동원 나비 수첩에는 장미꽃을 갈아 어떻게 빙수를 해 먹는지 적혀 있었네 붉은 노을 몇 방울 얼음 위에 뿌려라 간밤 잘라 놓은 초승달 체리랑 망고랑 수박이랑 함께 올려라 숟가락은 오목한 바람을 두 개 포개라 종달새 입으로 퍼먹어라 분홍 장미 향기가 나폴나폴 나비 되어 날아갈 때까지 자꾸자꾸 퍼먹어라 ........................................................ * 2017년 등단 아이들은 이렇게 놀고 싶어하는데 나는 그렇게 놀면 안 된다고, 내가 이야기하는 대로 놀아야 한다고 우겨서 기를 꺾어 놓습니다. 이렇게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이 오류를 고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찌할 수 없는 슬픔입니다. 아이들 세계에 다가가.. 2021. 5. 12.
「봄 난리」/ 雪木 내 독후감(아모스 오즈《숲의 가족》)에 설목 선생이 써놓은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시인은 감흥이 남다를 것 같기도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들어앉아 있어야 하는 사정을 생각하면 저 숲의 요동이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고, 거기에 "숲의 가족"이라는 책의 독후감이어서 '잠시' 그렇지만 '한바탕' 자신의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겠지요. 이 글이 그 댓글입니다. 숲에 가면 난리도 아닙니다. 꽃이란 꽃들이 난리입니다. 어리둥절합니다. 매화, 산수유, 동백꽃 들이 온통 난리 치고 간 다음 지금은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들이 뒤를 잇고 있습니다. 앞으로 복사꽃, 살구꽃, 철쭉, 연산홍 들이 난리 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꽃들만 난리입니까. 잎눈들이 눈을 뜨고 세상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 눈빛이 하도.. 2021. 4. 16.
박두순 《인간 문장》 박두순 시집 《인간 문장》 언어의집 2019 설목(雪木)이 네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진시황에게 ―시안 병마용갱을 보고 그대, 미처 몰랐는가 삶은 혼자 사는 거고 외로운 것이라네 산봉우리처럼 솟은 그대 무덤도 혼자고 무덤 높이는 외로움의 높이라네 살아서 아무도 그댈 지켜주지 못했지 자객이 들이닥쳤을 때 다 도망가고 혼자 자신을 지켰지 않았던가 보시게, 죽어서 지켜 주리라던 육천 병마용사도 눈 멀겋게 뜨고 무표정하게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네 그런데 누굴 믿나, 믿지 말게 그대 삶은 혼자 사는 거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것이라네 1 이건 설목이 나를 위해 쓴 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설목이 내 생애와 생각을 바라보며 '위로를 좀 해줄까?' 싶어서 궁리를 하다가 문득 진시황 무덤을 본 일이 생각나서 얼른 이 시.. 2019. 11. 12.
「종소리」&「상속자」 2016.5. 양평 종 소 리 박 남 수 나는 떠난다. 청동(靑銅)의 표면에서, 일제히 날아가는 진폭(振幅)의 새가 되어 광막한 하나의 울음이 되어 하나의 소리가 되어. 인종(忍從)은 끝이 났는가. 청동의 벽에 '역사'를 가두어 놓은 칠흑의 감방에서 나는 바람을 타고 들에서는 푸름이 된다. 꽃에서.. 2016.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