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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김윤식4

김윤식 「풍뎅이 두 마리가 사랑하고 있었다」 풍뎅이 두 마리가 사랑하고 있었다 김 윤 식 몸을 포갠 저것들 떨어지지 않게 위에 있는 놈이 밑의 놈을 꽉 껴안고 있다 남의 눈을 피하려는 듯 기쁨의 소리를 죽인 채 밑의 놈이 버둥거리며 나아간다 몸을 섞어 하늘 아래 한몸을 이루는 일 참 환하고 부끄럽다 잔등에 녹황綠黃 광택을 입은 풍뎅이 두 마리가 사랑하고 있다 ――――――――――――――――――――――――――――――――――――― 김윤식 1947년 인천 출생. 1987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고래를 기다리며』 『북어·2』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이 저문 종소리를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옥탑방으로 이사하다』 『길에서 잠들다』 『청어의 저녁』 2014년 7월 『현대문학』 에서 이 시를 읽을 때는 교미 중인 풍뎅이의 우스꽝스럽고 치열한 모습을.. 2022. 4. 18.
김윤식 「소라 껍질」 소라 껍질 김윤식 아치문을 달지 않고 높은 첨탑을 세우지 않아 이 건축은 하늘을 향한 고딕 양식이 아니다 주인은 넓은 마당을 가지지 않고 수레를 부리지 않고 현관에 등을 달아 저녁을 밝힌 적이 없다 은자처럼 촛불을 켜 들고 꼬불꼬불한 지하 계단을 밟고 내려가거나 문 앞에서 비를 맞았을 것 물이 들고 나고…… 삶이란 한 간 셋집의 고요 같은 것이고 옷 한 벌에 부는 바람 같은 것이니 굳이 아치문이나 첨탑을 두지 않은 주인의 고집스러운 건축 양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김윤식 1947년 인천 출생. 1987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고래를 기다리며』 『북어 2』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이 저문 종소리를 울릭 있다는 것이.. 2018. 6. 12.
김윤식 「동백이라는 꽃」 동백이라는 꽃 김윤식 이렇게 멀리 내려왔으니 사랑 한번 하자고 하는 것 같아 붉은 비애悲哀의 노래 한 곡 부르자는 것 같아 노을 아래 잔 내려놓고 반들거리는 잎 벗어 몸 차갑게 하고 나서 꽃처럼 툭 눈 감고 남해南海 청동靑銅 시퍼런 바다에 떨어져 죽자는 것 같아 ──────────────── 김윤식 1947년 인천 출생. 1987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고래를 기다리며』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이 저문 종소리를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 『길에서 잠들다』 『청어의 저녁』 등. 『현대문학』 2012년 3월호(172~173쪽)에 실려 있습니다. "아름답다"고 하고 싶은데 적절한 말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다시 한 번 한 줄 한 줄 읽어내려 가 보면, 역시 그런 단어 하나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어집니.. 2012. 11. 27.
선운사에 가보셨습니까?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선운사에 가보셨습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땐 어떻게 하십니까? -   아이들이 오지 않는 학교는 조용합니다. 저에게는 그들이 재잘거리고 떠들어대는 소리가 음악보다 낫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조용한 학교가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는 않습니다. 지금쯤 우리 아이들은 어디로 가 있을까요? 집에도 있겠지만, 시골이나 제주도, 설악산, 불국사 같은 곳에도 가 있고, 몇 명은 다른 나라의 어느 곳을 돌아다니고 있겠지요. 모두들 무엇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든 무엇인가 배우며 건강하게 지내기 바랄 뿐입니다. '선운사'라는 제목의 시를 보았습니다.  서정주가 다 버려놓고 간 절. 지난 봄 노근하게 동백꽃에 낮술을 먹이고, 한껏 육자배기 가락이나 뽑던 절. 고창에는 다시 오지 말자.. 2007. 8. 29.